친박의 중용으로 위기극복이 가능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단행한 이번 청와대 인사의 핵심은 친박 최측근들의 중용으로 요약된다. 친박 핵심인 이병기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에 기용하고, 정무특보단에 역시 새누리당내 친박 대표격인 김재원, 윤상현 의원을 임명한 내용이 그것이다.

사실 많은 무리와 논란이 따를 인사였다. 현직 국정원장이 곧바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보정치, 공작정치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들을 단지 의심많은 자들로 탓할 일만은 아니다. 게다가 이병기 실장은 국정원장 임명 과정에서도 과거의 ‘차떼기’ 가담, 북풍 공작 의혹 등이 논란거리가 된 바 있다. 이래저래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양지에서 일하기에는 음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를 비서실장에 앉힌 것은 청와대의 설명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믿음’은 언제나 다른 모든 것에 우선했다. 자신이 믿는 사람만 쓰는 박 대통령의 인사방식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용된 것이다.

정무특보 쪽으로 가면 논란거리가 더 심각하다. 정무특보 3인 가운데 김재원, 윤상현 의원 두 사람은 친박 가운데서도 강경파에 속한다. 친박 가운데서도 ‘골수’라는 소리를 듣는 의원들이다. 오직 대통령만 바라보는 두 사람의 충성심, 그에 따라 등장하는 튀는 언행들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문제는 이들이 민심과 어긋나는 모습을 종종 보여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현역 국회의원이 청와대 특보를 맡는 것은 3권분립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를 견제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를 맡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오죽하면 여당의 원내대표조차 “의원이 헌법기관인데 현직 의원이 대통령 특보가 되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다”고 했겠는가. 그런 인사를 한 대통령도, 그런 인사를 따르는 의원들도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를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병기 실장이 비교적 합리적인 스타일이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이번 인사에 요구되었던 핵심이 인적 쇄신이었음을 간과한 평가이다. ‘최악’을 피했으니 이 정도면 다행이라는 식의 소극적 눈높이이다. 위기 상황에서의 인사라는 것이 기대와 희망을 줄 수 있어야지, 최악을 면했다고 안도한다면 그것이 정상인 나라인가.

지금 시기에 청와대 인사를 주목했던 것은 레임덕을 맞은 박 대통령이 국정쇄신의 의지를 보일 것인가의 가늠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 어느 곳에서도 쇄신의 의미는 읽을 수가 없다. 여러 논란 속에서도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친박 인사들을 중용한 것은 결국 쇄신보다는 충성을 우선한 결과이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친박의 중용을 통해 집권 3년차의 국정장악력을 회복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데 충성도가 높은 친박들을 아무리 앞에 내세우고 주변에 포진시킨다고 위기가 해소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변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아무 것도 달라질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고 말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삶을 성찰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인간이 사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검토되지 않은 정권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아무리 말해도 성찰할 줄 모르는 정권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이다, 끝내 이런 식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존재할 가치가 과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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