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마케팅으로 책 팔릴지언정 MB정부 대북정책 결코 칭찬받을 수 없다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이명박 전대통령의 회고록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퇴임한지 2년이 채 안된 시기에 서둘러 회고록을 낸 시점부터 우선 묘하다. 그렇게 급하게 외교상 민감한 내용까지 포함해서 회고록을 발간한 것에 대해 이명박 전대통령 측은 ‘정책결정에 참고’하기 바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된 것도 아니고 정권이 재창출된 현 정부에게 전임 대통령이 국정과 관련해 경험을 공유하고 조언을 하기 위한 거라면 굳이 회고록이라는 방식이 아니어도 다양한 통로와 기회가 있을 것이다. 회고록 발간으로 인한 정치적 파장과 남북관계의 악영향을 감안한다면 회고록을 낸 이유가 단지 국정에 참고하라는 것이었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남북간 정상회담 논의가 진행되는 국면에서 자신의 정상회담 입장이 정당했음을 강변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에게 경고성 훈수를 두기 위함이 일차적 목적이다. 회고록은 수차례 정상회담 제안이 있었지만 북한의 잘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정상회담에 매달리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했다는 자기 정당화 논리로 가득하다. 기회가 있었지만 원칙을 지키려고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정부도 정상회담에 매달리지 말고 원칙을 지키라고 강력하게 훈수하고 있는 셈이다. 정상회담 외에 지금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이명박 전대통령은 우회적 비판을 하고 있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해서는 안되며 도발 후 댓가 요구라는 북한의 행태에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며 자신의 대북정책이 올바른 것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신뢰 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 등 교류협력 제안에 대한 불편함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

  정권을 재창출한 정부끼리 아웅다웅하는 것이 영 볼썽사납기는 하지만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의 대북정책이나 정상회담 추진에 불만을 갖는 것은 자유다. 자신의 대북정책이 옳았고 임기중 남북관계가 성공적이었다고 착각하는 것도 자유다. 그러나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자기 정당화의 논리를 국민들과 현 정부와 대통령에게 강변하는 것은 지나친 오만에 다름 아니다. 퇴임한 대통령으로서 겸허하게 역사적 평가를 기다리고 수용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치적 도리이지 청와대를 떠난 지 2년도 안되서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정치적 정당화에 나서는 것은 전형적인 장사치의 처신이다.

  남북관계와 관련한 회고록 내용은 철저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었다는 자화자찬 일색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한 내밀한 물밑 논의과정도 과감히 공개하면서 당시 북의 댓가 요구에 이명박 대통령이 당당하게 원칙을 지키며 정상회담을 구걸하지 않았다는 자기 정당화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와 남북관계의 총체적 파탄을 결과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을 퍼주기와 끌려다니기로 규정하면서 북한의 버릇을 고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버릇을 고치지도 못했고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임기 내내 남북관계 파탄과 군사적 긴장고조로 일관했고 천안함 연평도 사태와 같은 안보위기마저 겪어야만 했다. 퍼주지 않으려면 잘줘야 하고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북을 잘 끌어냈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자기 주장에만 매몰되어 원칙만 무성한 채 북을 혼내주지도 변화시키지도 굴복시키지도 못하고 오히려 북의 도발에 당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말뿐인 단호함이었고 상처뿐인 원칙이었던 셈이다.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은 말이 중요한 게 아니고 실제로 나타난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회고록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북이 부당하게 댓가를 요구했고 그래서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언급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자기 논리의 강변에 불과하다. 우선 북이 요구했다는 쌀과 비료 등의 지원은 정상회담의 댓가라기 보다 정상회담으로 가기 위한 남북관계의 여건마련의 측면이 강하다.

  정상회담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같이 개최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김대중 정부도 금강산 관광 등 교류협력이 진전되고 대북 인도적 지원이 지속되고 상호 신뢰가 쌓이면서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 역시 2.13 합의로 북핵문제가 진전되고 대북 인도적 지원으로 남북관계가 지속되면서 정상회담의 조건이 마련되었다.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와 상호 협력의 지속을 통해 그 결과로서 가능한 것이지 관계 개선과 상호 신뢰 없이 갑자기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남북관계의 ‘입구’가 아니라 ‘출구’로서 정상회담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포함해 역대 모든 정부가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정작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만 성사된 것은 갑작스런 정치적 흥정이 아니라 꾸준한 남북관계의 성과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정상회담이 가능하려면 남과 북 모두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 정상회담의 환경마련의 의미로 북이 인도적 지원 등을 거론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도 북에 국군포로 납북자 귀환을 요구했음은 스스로도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정상회담 논의 과정에서 북이 쌀과 비료 지원 등을 거론한 것을 두고 정상회담 계산서를 들이밀었다는 식의 이명박 전대통령의 인식이야말로 정상회담의 초보적 상식조차 모르는 무지의 소치에 다름 아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자화자찬은 오히려 남북관계 악화를 결과함으로써 북한을 관리해내고 한반도 평화를 지켜내야 하는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로 귀결되면서 칭찬이 아니라 반성의 대목이 되어야 한다. 끌려다니지 않았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무모한 고집과 오기만을 내세워 북한관리에 실패함으로써 한반도 긴장고조와 남북관계 파탄을 초래했다는 역사적 오점에 대해 오히려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책은 팔릴지언정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결코 칭찬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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