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는 용납하지 않는 부전여전(父傳女傳)의 정치학

요즘 김무성 대표를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한다. 그 역시 지난 대선에서 NLL 회의록을 입수해서 낭독했다는 의심을 받는 등 여러 가지로 허물많은 정치인이지만, 요즘은 당해도 너무 당하고 있으니 하는 얘기이다. ‘박근혜 사람들’에게서이다.

지난 연말 새누리당의 친박 실세들은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났다. 김 대표는 빼고. 그 자리에서는 박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대표를 향한 우려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 직후 친박들은 “대표직에 임기가 있느냐”면서 그에게 돌직구를 날리며 견제에 나섰다. 김 대표가 추진하던 ‘박세일 여의도연구원장’ 카드도 친박의 강력한 반대에 제동이 걸렸다. 김무성 견제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어처구니없게도 청와대 일개 행정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급기야는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집권여당의 대표가 문서유출 범죄의 배후로 지목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 소리를 듣고 청와대에 전화를 건 집권여당 대표는 끝내 비서실장과 통화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서실장이 전화조차 안받았다는 것이다. ‘보기드물게 사심이 없는’  비서실장은 그렇게 여당 대표를 냉대했다.

정권마다 당청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집권여당 대표가 홀대받고 멸시당하는 광경을 본 일은 기억에 없다. 이름붙이자면 ‘김무성의 수난시대’이다. 친박 행정관까지 그런 말을 하고 다닐 정도니, 김무성 대표를 향한 청와대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가를 실감할 수 있다.

‘박근혜 사람들’이 이토록 김무성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이고, 따라서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당장 내년 총선에서 친박에 대한 공천학살을 자행하는 ‘김무성의 난’이 있을까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뒤에는 ‘박심’(朴心)이 존재한다. 박 대통령은 언제나 ‘사심없는’ 사람만 좋아했고, 자신의 야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믿지 않았다.

박정희 시절이 그러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권력의 2인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아무리 측근이라 해도 그가 2인자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 이내 제거되곤 했다. 김종필이 그랬고 윤필용이 그랬고 이후락이 그랬다. 박정희 자신이 쿠데타를 모의하여 권력을 찬탈한 자였기에, 그는 언제 누가 자신의 권력을 넘볼지 모른다는 경계를 하며 살았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힘이 쏠린다 하는 인물이 발견되면 그대로 놔두지않고 그를 거세하곤 했다. ‘박정희 콤플렉스’다. 자신을 위해 일해온 측근에 대한 신임도 있지만, 동시에 그를 경계하는 마음이 내면에 복합적으로 자리하곤 했다. ‘박정희 콤플렉스’는 상황을 왜곡된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었고, 객관적인 상황판단을 어렵게 만들었다.

집권여당 대표에게조차 저토록 모멸감을 안겨주고 적대시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박정희 콤플렉스와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생물학적 DNA는 이토록 놀라울 정도로 정치적 DNA로 이어지고 있다. 나만을 위해 사심없이 충성하지 않는 자는 언제 배신할지 모르니 믿을 수 없다는 심리구조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세월은 무척이나 많이 지났다.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 일 수 없다고 하겠지만, 대통령이 태양이던 시대는 이미 끝난지 오래이다. 아무리 스스로 ‘태양왕’임을 자처해도 권력은 유한할 수밖에 없음을 일찌기 루이 14세의 운명을 통해 역사는 말해주었다. 김무성에 대한 과도한 적대시 정책은, 변화한 시대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부적응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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