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의 부재 다시 드러낸 엇박자

영화 <국제시장>. 덕수(황정민)가 돈 벌러 베트남에 가겠다고 하면서 아내(김윤진)와 부부싸움을 한다. 마침 그때 애국가가 울리고 둘은 머뭇거리다가 태극기를 향해 서서 가슴에 손을 얹는다. 어디서든 정해진 시간에 국기하강식이 있으면 부동 자세로 국기를 향한 경례를 하고 있어야 했던 그 시절의 풍경이다. 아무리 국가주의가 판치던 시절이라고 해도 설마 부부싸움을 멈추고 태극기 바라보면 경례를 하고 있었겠나만,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들어갔다. 그냥 웃으라고 집어넣은 장면이라는 해석도 있고, 당시의 국가주의 문화를 풍자한 장면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 장면이 들어간 이유를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관객들의 자유이다.

그런데 아무리 해석은 관객들의 자유라 해도 대통령의 심각한 해석은 우리를 무척 불편하게 만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하더라"며, "그렇게 해야 이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애국가에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이런 가사가 있지 않느냐"며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미안한 얘기이지만, 대통령의 이같이 결연하고도 애국적인 해석은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인 것이거나, 아니면 비판적 풍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꾸로 해석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언제인가 외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로부터 대통령의 자리라는 것은 정말 사심 없는 애국심을 가져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 박 대통령이기에 남들은 다 웃고 넘기는 장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했는지 모른다. 남들은 다들 웃고 있는 장면에서도 홀로 애국심을 생각할 정도로, 대통령은 그렇게 고독한 존재여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통령의 영화해석은 여론시장에서는 소수 의견 취급을 당하고 있다. 대통령의 애국적 발언은 <국제시장>이 세대 간의 통합적 역할을 할 영화라는 긍정적 평가에 찬물을 끼얹은 결과를 낳고 있다. 애국적 영화에 힘을 실어주려는 노이즈 마케팅인가, 아니면 보려던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흥행에 찬물을 끼얹은 발언인가.

다시 생각이 드는 것은 공감능력의 부재라는 박 대통령의 치명적 결함이다. 다들 풍자로 웃고 넘어가는 장면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라는 각오를 떠올리는 대통령의 어색한 모습, 거기에서 느끼게 되는 정서적 괴리감은 세월호 참사 때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나의 시선은 이제 <국제시장>을 벗어나 세월호 참사 직후의 상황으로 이동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자기 아들 딸을 잃은 것처럼 눈물흘리고 있을 때, 유독 박 대통령만은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 대통령은 눈물도 없느냐는 얘기가 장안에 파다해지고 나서야 대통령은 굳이 아이들의 이름까지 불러대며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공감의 눈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세상과 오랫동안 유리되어 살아온 개인사가 있으니 이해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없는 마음을 억지로 만들어 내라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가 단지 개인이라면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러나 세상과 소통도 공감도 되지 않는 사람이 나라의 책임을 맡은 것은 개인으로서나 국가로서나 무척 불행한 일이다. 정치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데서 시작되는 것인데, 가장 큰 정치를 하고 있는 대통령이 세상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할줄 모른다면 나라가 어찌될지를 걱정하는 것은 이미 기우가 아니다. 대통령의 영화 감상법조차 우리와 무척 다른 현실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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