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 속의 그림자 정윤회, 세상에 실체 드러나려나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불리워온 정윤회 씨가 실제로 청와대 비서관들과 회합을 정기적으로 가지면서 국정에 개입해왔다는 청와대 내부 문건이 보도되어 파문이 일고 있다. <세계일보>는 오늘(28)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이 문건에 실린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 문건에는 정 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우는 청와대 비서관 3인을 포함한 10명의 인사가 정기적으로 만났고, 그 자리에서 청와대 내부 사정과 인사 문제를 논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속칭 증권가 찌라시에 떠돌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은 정 씨가 자신의 비선라인을 활용해 퍼트린 루머였다는 내용도 있다. 정 씨는 지난해 이들과의 송년 모임에서 김 실장의 사퇴 시점을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다면서 참석자들에게 정보지 관계자들을 만나 사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포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그런가 하면 보고서는 정 씨가 지난해 말 송년 모임에서 “(김기춘 실장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정 씨가 검찰 인사에도 개입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YS 정부 시절의 김현철 국정농단파문을 떠올릴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아무런 공식 직함도 없는 정씨가 자신이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을 배경으로 청와대·정치권 내부 인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국정에 개입해왔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정 씨의 행위도 문제이지만, 청와대 비서관들이 내부 동향을 외부 인사에게 전달하곤 했던 것도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윤회 씨 이름만 나오면 펄쩍 뛰곤 했던 청와대로서도 이제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최소한 청와대 내부에서도 정 씨에 대한 사실상의 감찰이 있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일축하는 반응을 보였다. 민경욱 대변인은 <세계일보>에 난 청와대 관련 보도내용은 사실이 아니라 청와대가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보도된 내용에 대해서는 시중에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고,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보도된 문서는 분명히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되어있다. 이 보고서는 경찰 출신 A경정이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지시로 작성했고, 김기춘 실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적인 지시에 의해 작성되고 보고까지 된 공식 보고서인 셈이다. ‘근거없는 풍설이라는 청와대 대변인의 말 한마디로 덮고갈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더구나 감찰 보고서가 제출된 지 한 달 만에 보고서를 작성한 A경정은 원대복귀했고, 조 비서관은 그로부터 두달 뒤 사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그 배경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보고서에 나오는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행위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청와대 비서관들이 정 씨에게 넘겨준 정보들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이 보고서가 작성된 이후 청와대는 관련자들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 등이 규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윤회 씨 이름만 나오면 일단 터무니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해온 청와대의 태도를 볼 때 청와대 스스로가 이 문제를 밝힐 자격은 없어 보인다. 우선은 청와대의 상세한 설명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미흡할 때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서라도 진상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의 보도는 그동안 풍문 속의 그림자로만 존재했던 정윤회 씨를 세상으로 불러내어 묻을 것을 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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