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마지막 의지할 곳이 된 부끄러운 현실

"세월호 사건에 가슴이 아프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국 땅을 밟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왼손을 가슴에 얹으며 그렇게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다. 교황과 세월호 유가족의 만남은 이번 방한 일정에서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킬 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교황은 15일 대전에서 열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앞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과 유족들을 직접 만나 위로하기로 되어있다. 그리고 16일 광화문에서는 시복미사가 있다. 그곳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이 계속되고 있다. 천주교 측은 시복미사가 있다고 해서 유가족에 대한 강제퇴거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 이처럼 교황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손을 잡고 아픔을 위로하려는 마음을 갖고 한국을 찾았다.

 

교황은 고통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만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용산참사 유족,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강정마을과 밀양 주민들과도 만난다. 교황이 이들을 만난다는 것이 물론 이들의 요구에 다 동의하거나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것에 상관없이 아픔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손을 마다하지 않고 잡아주며 그들에게 용기를 주려는 의미일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내미는 손을 잡기 이전에 정치적으로 어떤 득실이 있을까를 먼저 계산하게 되는 정치지도자들과는 다른,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신자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교황의 방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의지할 곳 없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교황의 메시지가 큰 힘이 되어주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라는 대통령은 세월호에 대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조차도 세월호의 아픔을 제대로 껴안고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황은 유가족들에게는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이 되어버린 모습이다.

 

사실은 대단히 부끄러운 장면이다. 이 땅에는 대통령도 있고 여야 정치지도자들도 있고, 각 분야의 많은 지도자들이 있건만, 그들은 큰 위로의 역할을 해주지 못해왔다. 나라 안에서 치유해야할 고통을 한국을 잠시 다녀가는 교황이 치유해주기를 바라는 모습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두 명의 추기경이 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이 그러했듯이 두 추기경 역시 세월호의 아픔을 위로하는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었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약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추기경들이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 엄혹했던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거치던 시절, 고 김수환 추기경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19876월 갈 곳 없는 학생들이 명동성당에 들어와 농성할 때, 김수환 추기경은 경찰이 학생들을 연행하려는 움직임을 끝까지 막아냈다. 그 때 김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 맨 앞에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뒤에는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그 뒤에는 또 수녀들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다음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후일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나서 김 추기경도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민주화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던 시절에 추기경은 그들을 지켜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때를 아직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세월호의 아픔에 별달리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는 두 추기경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서 이 땅에서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한 유가족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며 손잡아달라고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교황의 방문을 향한 많은 기대들은 거꾸로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교황의 방문을 통해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을 스스로 들여다볼 기회를 갖게 될 것 같다. 부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땅에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가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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