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나는 정말 씁쓸한 상황을 목격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권은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없애려고 많이 노력했다.

국회도 '열린국회'를 만들기 위해 대폭 개방했고 국회내 '의원전용' 엘리베이터도 없앴다.

과거와는 달리 대통령도 큰 소리 못치고, 국회의원도 '뻐기고' 다니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언론들의 위세는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다.
기자들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는 과거 구태의 모습에 그대로 젖어 있어서 안타깝다.

이날 나는 한 기자의 행동에서 이와같은 현실의 한 단면을 여지없이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몇몇 기자들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국회로 향했다.

국회 정문 우측, 국회 도서관 앞 출입문을 이용해 들어가려던 나는 출입문 앞에 서 있는 10여명의 기자들과 마주쳤다.

국회 정문 앞에서는 대한안마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시각장애인 집회가 열리고 있었고 이 때문에 출입문은 봉쇄돼 있었다.

국회 경비대소속 의경들은 집회로 인해 문을 열어줄 수 없다며 국회 뒤편 출입문을 이용하라고 말했다.

이때 유력 중앙일간지 한 기자가 의경들에게 아주 고압적인 자세로 "야 문열어!, 열란 말이야"라고 반말로 소리쳤고, 그래도 출입을 차단하자 이 기자는 "야, 누가 시켰어 담당이 누구야!" "전화번호대"라고 흥분했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눌러대며 의경에게 "전화번호가 뭐라고? 몇번?" "씨X놈의 새끼들!"이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욕설을 내뱉은 후 마치 '감히, 내가 누군데 너희들이 못 들어가게 해' '다 죽었어' 이런 기세로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그는 담당자라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00일보, 000 기잔데요, 여기 국회 앞인데 출입문을 닫고 못 들어가게 하거든요"라고 소리쳤다.

상대편에서 신분을 다시 물었는지 "00일보요, 지금 여기에 국회 출입 기자들 3,40명 있는데 지금 바로 들어가야 돼요"라고 흥분한 어투로 말했다.

이 기자는 그러더니 출입을 차단하고 있는 의경에게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팔꿈치로 툭툭 치며 "전화 받어" 하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네주고 다른 의경들에게 "지금 문 열어 주라고 하니까 빨리 열어!"하고 다시 소리쳤다.

한참의 실갱이 끝에 문이 열리자 이 기자는 "여기 담당이 누구야, 누구야! 경비단장이라고?" 무슨 조사관처럼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자신이 담당자를 '어떻게 처리'라도 하겠다는 기세로 당당하게 걸어들어 갔다.

그래, 국회 도서관 앞에서 집회가 진행됐던 것도 아니고, 격렬했던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출입을 차단하고 멀리 돌아가게 할 필요는 없었다.

집회를 한다는 이유로 시위단을 테러집단화해 국회를 '성역화'하고 무조건 문을 틀어 닫은 국회도 잘못이다.

과거와는 달리 국회가 많이 개방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회 출입문에서부터 "왜왔느냐" "무슨일로 왔느냐"고 시민들을 고압적으로 대하는 국회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항의하는 기자의 자세도 똑같았다.
"이 상황이 국회 문을 봉쇄할 정도까지의 위급한 상황이냐, 국회를 일방적으로 닫아 걸고 못 들어가게 하느냐"는 항의가 아니라 '감히 나를 막느냐'는 식의, 욕설까지 내뱉는 귄위적인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했다.

'술먹고 난동 부리는 국회의원, 국회 여직원에게 욕설하는 국회의원'을 과연 기자로서 비난할 자격이 있냐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가 서울 모 호텔앞에서 자신을 "대통령 친구"라고 하며, 20년간 국회출입한 정치부 기자, 신문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며 '폭언' '폭행' '음주활극'을 벌였던 사건이 떠올랐다.

음주운전에만 걸려도 기자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 장관'을 거들먹거리던 과거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같은 기자로서 부끄러웠다.

함께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내적인 민주주의, 인간적 성숙함이 부족하다.

SNS 기사보내기

키워드

#기자수첩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