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의 오기로 위기를 수습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거치고 문창극 사퇴와 정홍원 유임을 거치면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있은 이후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적폐 척결과 국가대개조를 약속했다. 그러나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등장은 그러한 약속에 찬물을 끼얹었다. 친일 식민사관과 극우 편향적인 이념을 가진 사람이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대개조 작업을 지휘한다는 것은 애당초 어불성설이었다. 박 대통령이 진심으로 민심을 수습하고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려 했다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온 그런 인물을 중용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결국 국민 대다수가 등을 돌린 가운데 문 후보자는 사퇴했다  

그러나 사퇴하던 문 후보자는 물론이고 박 대통령의 입에서도 국민에 대한 사과의 말 같은 것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인사 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문 후보자 개인에 대한 미안함은 드러냈지만, 정작 그로 인해 깊이 상처를 받은 수많은 국민들에 대해 대통령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신의 인사 실패보다는 문 후보자를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하도록 막은 많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읽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인식은 마침내 정홍원 총리의 유임 결정으로 이어졌다. 정 총리 유임은 물론 인물난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총리 부재 상황이 장기화되는데 따른 부담을 의식해서 원점으로 회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에 그 정도로 총리감이 없는 것이었을까. 새로운 총리감을 못찾은 것일까, 안찾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동시에 든다. 정 총리 유임이라는 박 대통령의 결정에서는 강한 오기 같은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싶은 사람마다 번번이 막으면서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렇다면 나도 원래대로 그냥 가겠다는 식의 메시지가 정 총리 유임에는 담겨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 역시 거듭된 인사실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총리 후보자들에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안대희-문창극 두 총리후보자가 연쇄 낙마하는 전례없는 사태가 빚어졌음에도 박 대통령의 인식과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불만을 갖고 적대시하는 모습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국민 앞에 고개 숙이며 자신의 부족도 탓하는 자성의 모습을 보일 때가 되었건만 여전히 그럴 기미는 없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김기춘 비서실장의 건재이다. 거듭되는 인사실패에 대해 청와대의 인사책임자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김기춘 퇴진론이 제기되었지만, 결국 김 실장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박 대통령의 요지부동 고집에 따라 계속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다. 청와대 인사수석실 부활을 말하기 이전에 박 대통령의 사과와 김기춘 실장의 사퇴가 앞서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국가운영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인데, 거듭된 인사참사에도 불구하고 김 실장을 지키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되어있다.  

아무리 새 총리 후보자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그렇다고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키 위해 물러나게 되어있던 정 총리를 유임시킨 것은 정상적인 국가운영의 궤도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지는 것인가.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총리감 하나 찾지 못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국가를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국가운영 포기 선언이요, 자신의 무능력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능력이 안되면 겸손하기라도 해야 한다. 몸을 낮춰 야당과 국민에게 손을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래야 나라가 유지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스스로 능력의 바닥을 드러내면서 아무 것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해오던 그대로 하겠다는 오기마저 전해진다. 그러나 상황은 녹녹치 않다. 이미 박 대통령 지지율은 무너졌다. 이전의 박근혜가 아니다. 이제 레임덕은 본격화되고 있다. 이 위기상황에서도 자신의 고집을 앞세우며 통치를 하려는 것은 민심을 더 등돌리게 만들고 자신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위기는 어느 정부 때의 위기보다도 심각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그에 따르는 정치적.사회적 비용도 무척 클 것이다. 대통령 한번 잘못 뽑은 댓가가 이렇게 클줄 몰랐다는 탄식이 국민의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박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다면, 남은 38개월은 모두에게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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