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대결과 대화 놓고 남쪽이 선택하라는 입장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북한은 알다가고 모를 나라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서해 포사격을 강행하는 혼란된 시그널을 보내는 나라다. 남쪽 여론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애도 표명과 남쪽 여론을 무시하는 해상 사격훈련은 전혀 일치되지 않는 극과 극의 모습이다.

  남북관계도 종잡을 수 없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미연합훈련 기간과 겹치는 데도 불구하고 애초의 날짜 변경요구를 포기하고 우리의 이산가족 상봉을 순순히 수용했던 북한이다. 통 크게 남쪽에 양보했다고 그들 스스로 우쭐대기도 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 기도로 비난하고 대통령 실명까지 거론하며 입에 담기 힘든 개인적 험담을 일삼고 있는 북한이기도 하다. 도대체 김정은 체제가 구사하는 대남전략의 본심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처럼 헷갈리는 북한의 대남 시그널은 김정은 체제의 자신감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해 볼 만하다.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 시대와는 다른 상대적 자신감을 갖고 있다. 권력승계 직후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데 이어 소형화 경량화의 3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안보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지해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안보위기의 김정일 시대에서 이젠 안보확보의 김정은 시대라고 자평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홀로서기 작업도 리영호 숙청, 최영림 해임에 이어 장성택 처형을 정점으로 아버지 김정일의 그림자를 벗어나 당정군에 대한 독자적 권력 장악을 마무리했다. 6.28 방침과 경제개발구 전략은 김정은의 개혁개방 브랜드로 제시되었다. 이른바 병진노선을 통해 국방비를 추가로 늘리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을 높여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한다면서 경제우선의 발전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비공식 경제의 성장과 북중교역의 꾸준한 지속으로 식량난이 완화되고 경제상황이 호전되는 것 역시 김정은 체제의 자신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제 북한이 경제난 때문에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은 상당히 해소되고 있다는 평가다. 김정일의 집권 초기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며 사상 최대의 체제위기에 직면했다면 김정은의 집권 초기는 지금 강성국가 진입을 주장하며 상대적 자신감을 갖고 있는 셈이다.

  최근 김정은 체제의 대미 대남 전략은 이같은 자신감의 발로이다. 미국에 협상을 구걸하기보다는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고위급 군사회담과 조건 없는 6자회담으로 적극 공세에 나서고 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만큼 이제 북미협상이 없어도 손해볼 게 없다는 입장이다. 협상을 할 테면 하고 말 테면 말라는 자신감이다.

  김정은의 대남 전략 역시 자신감의 관점에서 설명 가능하다. 2013년 최고조의 전쟁위기는 전쟁불사를 실감케 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필요성을 각인시키기 위한 대담한 강경정책이었다. 2014년의 고위급 접촉 제안과 이산가족 상봉 수용은 생산적인 대화를 위한 것이라면 유연하게 양보할 수도 있다는 통 큰 유화정책이었다. 극단적 위기고조와 상상 이상의 통 큰 양보를 높은 진폭과 빠른 속도로 번갈아 교차하는 것은 남측에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대남 자신감 때문이다. 북의 대남전략은 강경과 유화를 오고가면서 과거에 비해 진폭이 크고 강도가 세며 기간도 훨씬 짧아졌다. 전쟁과 평화, 대결과 대화를 놓고 이제 남쪽이 선택하라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남북대화 없이도 잘 버텼고 따라서 크게 아쉬울 게 없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과 대남 자신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북한 붕괴와 급변사태 임박론에 사로잡혀 주관적인 대북정책을 고집한다면 남북관계는 한발도 나가기 어렵다. 통일 대박론이나 드레스덴 연설이 북한이 고개 숙이고 나올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를 전제한 것이라면 당연히 북의 호응은 불가능하다. 북한이 망해가는 게 아니라 상태가 나아지고 있고 실제 김정은이 대내외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처음부터 다시 재검토되어야 한다. 정세판단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김정은은 남쪽을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대하고 있다. 아직 한국 정부는 북한을 잘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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