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 전격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하면서 일단 남북관계는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신년 벽두부터 남북은 대화재개를 서로 주장하면서도 자기 주도하에 시작하려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북은 신년사에서 비방 중단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지만 정작 박근혜 대통령의 이산가족 상봉제안에 대해서는 ‘좋은 계절’을 이유로 사실상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도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라며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지만 정작 북이 비방 중단과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중대제안을 더 높은 급에서 요구한 것은 진정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2014년 초 남북관계는 서로가 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작 대화재개를 위한 조건에서 상대방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샅바싸움이 지루하게 진행되었던 셈이다.

어렵게 성사된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은 관계 개선의 첫 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어야 한다. 상대를 믿지 못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매번 진정성 결여로 간주하는 한, 이산가족 상봉 과정이나 이후에도 남북은 진정한 의미의 신뢰를 쌓지 못할 수 있다. 자신의 요구에는 상대방이 무조건 응해야 그것이 진정성이고, 자신은 상대의 제안을 항상 불신과 의심으로 바라보고 거부한다면 상호 신뢰 형성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지금 남북은 상대를 불신하기보다는 일단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상호 신뢰의 첫 단추를 꿰는 게 중요하다.

대화가 성사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면 남북 모두 서로 양보하고 유연한 접근을 해야 한다. 대화를 하겠다는 생각이고 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북은 한미합동훈련 중단을 전제조건화하지 말고 이산가족 상봉에 불필요한 조건을 달지 말아야 한다. 남측 역시 무리한 비핵화 조치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지 말고 북이 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한 이상 북이 원하는 금강산 관광 회담을 전향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을 완전 굴복시켜야만 대화가 시작되는 구조라면 어떤 경우에도 쌍방의 대화는 시작될 수 없다. 그것은 대화제의가 아니라 굴복을 요구하는 강압이자 압박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말 그대로 서로가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한꺼번에 상대방이 높은 수준의 신뢰를 보여야만 시작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프로세스가 아니다. 낮은 수준에서 조금씩 벽돌 한 장을 쌓는 심정으로 서로 신뢰를 만들어가는 프로세스여야 한다. 따라서 2014년 남북대화 역시 상대방의 일방적 신뢰조치를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신뢰의 손을 내미는 게 필요하다. 진정성이라는 말로 북한의 비핵화나 완전굴복을 요구하고 그것이 되어야만 북의 신뢰를 믿을 수 있다고 간주한다면 이는 쌍방향의 신뢰 프로세스가 아니라 일방적인 요구일 뿐이다.

상대방의 굴복을 신뢰의 조건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를 쌓기 위해 내가 먼저 신뢰를 위한 행동을 보일 필요도 있다. 북한의 조치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passive, reactve) 신뢰형성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먼저 주동적으로 적극적으로(positive, active) 손을 내미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접근은 어떤 경우에도 교류협력을 포기하지 않고 남북관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고수하고 견지해야 한다. 북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유지되고 진전될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만이 신뢰형성을 가능케 함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 버릇 고치기라는 ‘잘못된 원칙’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신뢰형성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원칙을 내세우고 오히려 이 원칙을 위해 더 큰 유연성과 적극성을 발휘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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