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남북의 신경전이 거세다. 새해 들어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의지는 남북 모두 동일하지만 대화 재개를 놓고는 상대방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기싸움이 한창이다. 서로 상대방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면서 대화 재개를 위한 기싸움에서 상대방에 밀리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연초 남북의 핑퐁게임은 양측 모두 대화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북한은 장성택 처형 이후 대외관계 개선의 필요성에서 남북대화의 진전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부 체제단속과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한 연후에 이제 김정은은 인민들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무엇보다 경제적 성과를 내야하고 이는 외부로부터의 협력과 지원을 얻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장성택 사태 이후 북한은 일관되게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강도 높은 대화제의와 유화공세에 나설 공산이 크다. 신년사의 기조와 국방위의 중대제안과 비방중상 중단 의지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고 이산가족 상봉의 전격 수용 등 남북대화를 위한 북의 노력은 예상 외로 적극적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집권 2년차를 맞는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금년에 얻지 못한다면 임기 내 실질적인 관계 진전을 이루기 힘들다는 점에서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조건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 자체를 거부할 수 없다. 북의 신년사를 비판하면서도 대통령의 신년회견에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를 강조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다. 북의 선행동과 진정성을 조건으로 걸고는 있지만 임기 2년차에 남북관계가 어떻게든 시작되어야 한다는 데는 박근혜 정부도 이의가 없는 것이다. 결국 2014년 남북관계의 구조는 남북 모두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서로 손뼉을 부딪치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필요성만으로는 미흡하다. 상호 필요성이 실제 가시적 성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남북이 대화 자체는 공감하지만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조건에서는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북은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고 남측은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상대방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요구하면서 상대방이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한다면 결코 대화는 시작할 수 없다.

북측이 요구하는 한미합동훈련 즉 키리졸브 훈련은 해마다 연례적으로 진행해오던 방어용 연습이고 도상훈련이다. 북한 역시 연례적으로 이때 쯤이면 이 훈련을 핑계로 대남 비난 성명을 내고 훈련 중단을 요구했지만 그 뿐이었다. 훈련이 끝나면 평상시의 남북관계로 돌아가곤 했다. 다만 지난 해의 경우에는 특이하게 한미합동훈련과 북한의 3차 핵실험이 겹치고 유엔의 대북제재가 결합되면서 평소와 달리 강도 높은 긴장고조와 전쟁위기가 지속되었고 개성공단 폐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올해는 북이 당장 4차 핵실험을 할 필요성과 이유가 없다. 이미 지난 해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무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했고 그에 따라 핵억제를 통한 안전보장을 확보했다고 선언한 만큼 지금 당장 추가적으로 급박하게 핵실험을 할 이유가 사실상 없다. 따라서 금년에 북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 조건에서는 한미합동훈련 중단을 명목적으로 요구하지만 훈련기간이 종료되면 그에 따라 대남 비난도 사라지고 다시 유화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결국 북이 수사적으로 요구하는 한미합동훈련 중단은 사실 향후 남북대화 재개에 결정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훈련기간 경과와 함께 북의 대남 요구조건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오히려 남측이 요구하고 있는 비핵화 조치가 대화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면 이는 현실적으로 해결 난망한 걸림돌이 된다. 북핵문제는 이미 악화되어 있고 북한이 비핵화로 되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미 사실상 핵능력 국가가 되어 있고 농축 우라늄뿐 아니라 플루토늄 시설까지 재가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통제하고 관리할 6자회담마저 재개 가능성이 희박한 조건에서 남측이 북에게 대화재개를 위한 조건으로 비핵화를 요구한다면 이는 사실상 대화재개를 포기하는 셈이 되고 만다. 이명박 정부 시기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을 전제조건으로 대대적인 화해협력을 제안했던 이른바 ‘비핵개방3000’ 구상이 시작도 못해본 채 남북관계 중단의 결과만 가져왔음을 돌이켜보면 선비핵화 조치는 비현실적인 요구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남북대화 재개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선비핵화를 북한의 진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비핵화는 6자회담과 북미협상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진전시켜 나가야 할 과정이지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서 그 결과를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실제 관계 정상화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진정성이라는 명목으로 상대방이 수용 불가능한 전제조건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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