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박론과 급변사태 대망론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언급하면서 부쩍 통일이 다가온 느낌이다. ‘대박’이라는 단어 선택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퍽퍽하고 답답한 국민들에게 새로운 도약과 번영과 통합의 계기를 제시했다는 점은 여야를 평가할 만하다. 일각에서 통일비용의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통일을 주저하거나 회피하는 현상이 존재함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통일의 필요성과 유용성과 정당성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통일 대박론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함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통일의 편익과 효과를 강조한 것은 올바르지만, 통일을 위한 우리의 지난한 노력보다 북한의 급변사태만을 팔짱끼고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고 있다. 2010년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뜬금없이 ‘통일세’를 언급하면서 당시 이명박 정부 후반기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교류협력은 제쳐두고 장관이 나서 통일항아리만을 열심히 빚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대북 강경 일변도로 치달으면서 남북관계의 채널도 통로도 대북 영향력도 전혀 갖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통일이 도둑처럼 올 수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정세인식은 화해협력 없이 북한붕괴만을 기대하는 MB식 ‘기다림의 전략’ 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급변사태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대북정책의 흐름과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이번 통일 대박론도 행여나 이명박식 되돌이표가 아닐지 우려하고 있다. 지난 연말 국정원장이 간부와 함께 한 송년회에서 2015년 통일실현을 목표로 죽을 각오를 다지고 독립군가를 불렀다는 보도는 단지 한 노장군의 객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대표적 보수신문이 새해 벽두부터 ‘통일이 미래다’는 연속기획을 게재하고 마치 당장 통일이 온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무언가 심상치 않다.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 변화에 대한 양국 협의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는 발표도 최근 북한의 불안정성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같은 흐름을 반추해보면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단순한 통일 필요성의 환기를 넘어 당장의 통일을 맞기라도 해야 하는 급변사태 대망론으로 읽힐 수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통일은 대박이지만 이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지난한 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 당장에 통일이 완성된 것처럼 통일 이후 장밋빛 청사진과 거창한 경제적 효과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가 기울여야 할 노력과 과정에 대한 고민을 잊게 만든다. 통일이 한국경제의 신성장동력임은 김대중 정부의 북방경제론, 노무현 정부의 평화경제론과 연속선에 있다. 그러나 통일 이후만을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은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즉 일관된 화해협력과 교류접촉과 관계개선의 프로세스를 생략한 채 당장 통일이 다 된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통일의 과정을 소거한 통일 대박론은 그래서 급변사태 임박론이거나 급변사태 대망론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렇잖아도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정세의 불안정성을 계속 강조하면서 마치 북에 정변이나 급변사태가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일부 언론을 겪어 본 뒤이기에 더더욱 통일 대박론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북한 정변설이나 대규모 망명설 등은 급변사태에 대한 주관적 기대와 희망을 앞세운 나머지 객관적이고 냉정한 현실인식을 부정한 대표적 사례들이었다.

급변사태 임박론은 이미 여러 번 그 정세인식의 저급함과 잘못됨이 지적되어 왔다. 무엇보다 지금 급변사태 임박론은 당장의 북한 정세와 부합하지 않는 비현실적 진단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권력 엘리트간 분화와 균열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형성되고 있지만 당장 급변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동구라파 체제전환의 필요조건이었던 주민들의 저항과 엘리트의 균열 및 소련의 해체라는 대외조건 등이 아직 북에게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불만이 있을지언정 집단행동은 불가능하고 시민사회의 맹아도 미형성이며 김정은을 정점으로 하는 수령 영도체제가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엘리트의 균열도 이제 가능성이 씨를 뿌린 것이지만 정치변동과 체제전환을 결과할 정도의 확실한 권력투쟁은 아직 시기상조다. 중국의 성장과 G2로의 부상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제어하는 대표적인 대외환경이다. 급변사태는 아직 임박하지 않았다.

또한 급변사태 임박론의 오류는 봉쇄와 압박이 북한의 붕괴를 촉진한다는 잘못된 접근이었다. 북한의 수령제는 사방에 포위되어 있다는 이른바 ‘피포위 의식’의 산물이고 이를 형성하는 주요한 배경은 적대적 대외환경이다. 오히려 압박과 봉쇄는 북한의 수령제를 정당화하고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지구상의 모든 독재체제는 봉쇄와 압박이 아니라 개방과 교류에 의해 내부적으로 변화가 시작된다. 북한 역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수록 수령제의 존재기반이 완화 내지 해제된다.

화해와 협력을 거부하고 제재와 압박으로 급변사태를 촉진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접근은 또한 결정적으로 급변사태 이후의 우리 주도권과 평화통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오류를 갖고 있다.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급변사태 ‘이후’다. 그 날 이후 북한 주민과 엘리트가 자발적으로 한국과의 통일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대북 압박과 강경 정책은 상호 적대와 대결을 강화함으로써 급변사태가 도래한다 해도 북한 구성원의 마음을 열기보다 굳게 닫을 것이다. 독일 통일이 위대한 것은 흡수통일해서가 아니라 동독 주민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서독으로의 통합을 원한 것이었고 그 결과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비폭력적으로 흡수통일을 이룬 것이다. 봉쇄와 압박은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 화해와 협력만이 북한 구성원의 마음을 사고 결국 우리가 주도하는 평화적 통일이 가능해진다.

통일 대박론은 그래서 반드시 과정으로서의 통일론과 결합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신뢰 프로세스 역시 오랜 기간 관계 개선과 신뢰 축적의 과정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지속적인 화해와 협력, 교류와 접촉, 관계 개선의 실질적 과정을 지나면서 통일은 다가오고 완성되고 대박이 된다. 오히려 과정으로서의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 급변사태를 촉진하고 정치적 변화를 추동해 낼 수 있다. 오랜 기간 교류와 협력과 이해의 과정을 거쳐야만 막상 급변사태가 온다 하더라도 우리가 주도하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완성할 수 있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고 상호 이해와 용서의 과정 없이 급변사태가 온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대박이 아니라 재앙의 통일이 될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필요충분조건을 생략하는 한, 통일 대박론은 실현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