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잘못 끼운 채, 제대로 옷 입을 수 없어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가까워오는 이 시점까지 국가기관에 의한 대선개입 논란 파문은 잦아들 줄을 모르고 정국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채동욱 검찰총장과 일선에서 책임을 맡아 수사를 진행하던 윤형렬 팀장 등이 자리에서 밀려나면서 더 이상 검찰에 수사를 맡길 것이 아니라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또한 국정원뿐만 아니라 군 사이버 사령부에서도 대선 시기 국정원과 보조를 맞추어 선거에 개입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지난 대선의 공정성 자체를 문제 삼는 여론도  늘어나고 있다. 뒤늦게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시정연설을 통해 여야 정치권이 합의하면 이를 존중하겠다고 언급했지만 엉킨 실타래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되돌아보면 애당초 이 문제는 이명박 정권에서 벌어진 일로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고 국정원 등 문제가 있는 부분이 드러나면 이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증폭될 사안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댓글 도움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이냐’는 대통령의 오기가 발동했고 문제가 된 국정원의 개혁을 국정원 자체에 맡기겠다고 하는 등, 첫 단추를 잘못끼움으로서 상황은 점차 꼬이고 말았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임기 1년차는 향후 5년간 국정설계를 제시하고 선거과정에서 나뉘었던 국민을 재통합하여 강력한 추동력을 바탕으로 국정 개혁의 드라이버를 걸어야 하는 시점이다. 임기 초 벌어졌던 인사실패는 그렇다 하더라도 대선 시기에 벌어졌던 사안에 발목이 잡혀 국론이 분열되고 국정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면 이는 대통령 자신은 물론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실종된 정치의 복원만이 해결의 지름길  

정치인 박근혜가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쌓음으로서 오늘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과거 한나라당이 대선에 실패하고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을 얻었을 때는 천막당사로 옮기고 자세를 낮춤으로서 위기를 극복했고 이명박 정권에서 세종시 수정안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도 국민과의 약속을 앞세워 정도를 걸음으로서 돌파할 수 있었다. 야당과 국민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이를 듣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정치 복원의 첫걸음일 것이다. 야당 또한 장외투쟁이나 특검과 법안, 예산안 연계전략 등으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얻으려 하지 말고 국회를 중심으로 사안별로 타협하고 절충할 것과 원칙을 지킬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퇴진을 거론하는 세력도 등장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지난 잘못을 철저히 밝혀서 책임을 묻는 것과 앞으로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정원 등에 대한 철저한 개혁을 단행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 다수의 요구가 특검이고 특위라면 여당이 굳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 눈치만 보는 무능한 여당이란 오명을 벗어려면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야당과의 협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고 대통령은 이를 수용하는 통 큰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연말 국회에서 여야가 산적한 민생현안을 다루면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공안 먹구름이 정치를 덮치면 최악의 상황이 올 것

여야가 정치로 해결해 나가야 할 사안들이 검찰 등 공안세력에게 넘겨지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소위 공안의 이름으로 군림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국민적 저항을 자초했고 역사의 심판을 받고 말았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통치, 전두환 정권 당시의 폭압적인 공안통치는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들 정권들은 쿠데타에 의해 권력을 잡아 정통성이 약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전철을 밟았던 것이다. 그런데 합법적인 대통령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주변에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도 보기 힘들었던 군 고위 장성 출신들과 공안 핵심세력들을 포진시키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검찰에서도 공안통들이 득세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최근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소위 ‘종북 프레임’은 우리 역사에서 ‘빨갱이’ ‘용공 좌경’이란 이름으로 수없이 되풀이 해온 수구냉전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색깔론’이며 ‘국민 편가르기’와 다르지 않다. 급기야 국가기관 대선개입 논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미사에 대해 청와대가 앞장서서 ‘종북’ 운운하며 색깔공세를 펼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다종교 국가에서 정권과 특정 종교의 갈등은 부분적으로 있어 왔지만 정권이 특정 종교를 적대시하는 언사를 내뱉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며 오히려 종교를 정치에 더 깊숙이 끌어들이는 부작용만 나타날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공안세력이 현 정권의 중심에서 국정을 주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이는 지극히 우려할만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안(公安)의 본래 의미가 공공의 안전이라면 가장 큰 공안은 바로 권력과 국민의 소통과정을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정권이 야당이나 국민과는 불통하고 공안세력의 힘에 의존해서는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는커녕  권력조차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의 교훈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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