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朴 일방통행에 무기력, ‘굴복’ 강요당한 민주 맥 빠진 안철수

박근혜정부 7개월은 거침없는 ‘보수본색’ 시즌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국민에게 어필했던 과감한 ‘좌클릭’ 흔적은 자취를 감추고 ‘안보이데올로기’와 ‘시장만능주의’가 정치경제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안보-국방-공안라인 중용과 보수인사 발탁에서 예고된 ‘보수본색’ 행보는 이른바 ‘NLL(서해북방한계선) 공세’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거치면서 한국 정치판의 시계를 ‘반북-안보이데올로기’가 주도해온 1980년대 이전으로 되돌렸다. 여기에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며 정치무대의 중심에 진입한 남재준 체제의 국가정보원이 자리잡고 있다.

국정원이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이해집단 간의 타협을 도모하는 정치 본연의 역할은 실종했다. 집권세력이 국정원 등을 통해 동원한 ‘힘’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면서 굴복을 강요하는 독재시절의 정치방식이 복구됐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민주당이 99%를 위한 정치를 내세우자 ‘100% 국민대통합’을 표방하면서 ‘화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불과 7개월 만에 여야간 갈등과 대립의 골은 더 깊어졌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맞물려 정권 쪽이 ‘반북안보 이념공세’를 강화하면서 우리 사회는 지금 ‘종북’ 딱지가 횡행하고 ‘지역 대립정서’는 더 깊어지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여야 대치정국을 풀겠다고 추석 밑에 가진 여야 대표와 국회 3자회담을 가진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 여러 정치현안과 관련해 오로지 자신만의 ‘원칙’만을 되풀이 했다. 야당 쪽의 의견은 외면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 등 야당 내 온건세력의 입지마저 위태롭게 할 지경이다.

박 대통령의 대표 브랜드였던 ‘경제민주화’는 어느덧 ‘대기업 기(氣) 살리기’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명박정부의 ‘시장만능주의’로 회귀했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분 앞에 경제적 강자인 대기업 규제는 쏙 들어갔다. 대선 당시 약속했던 집단소송제와 집중투표제, 그리고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개정안은 사실상 무산될 상황이다.

‘재정’을 이유로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던 ‘기초노인연금’도 후퇴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국민연금과 연계해 약 70%의 국민들에게 차등지급하기로 했다. 현행 노령연금법에 의거해도 2028년이면 노인의 80%가 소득에 따라 20만원을 수령하도록 돼 있단 점에서 사실상 백지화에 가깝다.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 보장 공약은 인수위 시절 일찌감치 선택진료비·간병비·상급병실료를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값 등록금’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이고 ‘고교 무상교육’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상황이다.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라며 보편적 복지를 수용했던 지난 대선 국면의 박 대통령은 지금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규제와 복지가 후퇴한 공간에 어김없이 ‘시장만능주의’가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는 상황이다. 경기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대책을 벌써 두 번에 걸쳐 내놓았고 세수 확대를 위한 ‘증세’도 경기활성화 저해요인이라며 팽개쳐졌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에선 다시 ‘복지 포퓰리즘’이란 정치적 수사가 세를 얻어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보수본색’ 회귀 행보에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선거 사기’라고 비판했다. 박근혜정부 7개월을 돌이켜보면 이러한 비판이 아주 근거가 없지 않다는 느낌이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패해 위기에 몰린 여권이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위해 택한 노선이 이른바 ‘박근혜표 좌클릭’이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도 ‘보수본색’, 朴대통령 ‘친위정당’ 역할 자임

박근혜정부의 보수회귀와 맞물려 새누리당도 급속하게 우경화했다. 총선과 대선 전의 위기감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때 꽃은 피우며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던 당내 개혁적인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오히려 전신인 ‘한나라당’의 보수본색이 선거 승리 이후 만개하는 듯하다.

지금 새누리당은 총선과 대선승리에 따른 도취감만이 지배한다. 국정원의 국기문란행위나 정치적 역할 강화, 박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60%를 넘나들고 새누리당 지지도 또한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이러한 비판을 무감각하게 흘리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의 우향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대응이다. 이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하더라도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음에도 이를 외면했다.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활동에 대해 태업과 파업을 일삼았고 심지어 이를 덮기 위해 국정원과 함께 대화록을 공개하는 등 이른바 ‘NLL 공세’를 펼쳤다.

심지어 국정원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종북몰이’를 주도했다. 야권의 국정원 개혁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정치 부활’의 동조자 역할을 자임했다. 새누리당 당내 회의 발언은 ‘종북’으로 도배되는 상황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정부가 기초노령연금 공약 후퇴 등 복지 공약 철회를 선언해도 그게 무슨 문제냐는 태도이다. 오히려 과거의 ‘복지 포퓰리즘’ 논리가 당내에서 세를 얻으며 ‘부자정당’의 면모가 부활하고 있다. ‘증세’와 ‘복지’에 반대하던 과거 ‘한나라당’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심지어 박 대통령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뉴라이트 계열 유영익 교수를 내정한 것에 발맞춰 새누리당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이승만-박정희 독재미화로 논란을 빚고 있는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당 실세로 거론되는 김무성의원을 필두로 이른바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선포, 친일과 독재 덮기에 앞장서고 있다.

또 새누리당은 여야간 대치정국이 장기화되고 있음에도 당내에서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의 노력보다는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의중 탐색에 더 분주하다. 박 대통령의 강경한 국정운영을 견제하기보다는 보조 맞추기에 급급하다. 박 대통령 ‘친위정당’ 역할을 자임하고 있어 과거 독재시절의 ‘민주공화당’과 ‘민정당’을 보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정치현안에 관련해선 여야가 알아서 해결하라며 한 발 뒤로 물러선 모양새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에게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황우여 대표가 있다지만 존재감을 상실했다. 황 대표가 여야 대치정국 속에서 야당과 내밀하게 소통하면서 이를 타개하고자 했으나 번번이 좌절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황 대표가 최고위원 회의 석상에서 한 발언도 곧바로 최경환 원내대표나 홍문종 사무총장에 의해 뒤집어지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이에 당내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내년 5월로 예정된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 쏠리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내년 전대구도는 ‘박심(朴心)’의 테두리 내에서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새누리당의 보수화는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근현대사 역사교실 모임을 주도하는 김무성 의원이 내년 전대를 겨냥한 세몰이에 나서면서 100여명의 의원들이 줄을 선 상황이다. 이에 친박 핵심지도부는 친박과 탈박을 거듭했던 김 의원에 대한 경계감으로 친박 원조 서청원 전 의원을 복귀시켜 김 의원의 전열을 흩트리는 작업에 돌입한 흐름이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리는 최경환 원내대표로의 세 쏠림 작업도 분주하다.

김무성 의원이든 최 원내대표든 이들 당권주자들은 모두 당내 영남보수파의 원조격이다. 우향우로 치닫는 새누리당에 제동을 걸 당내 개혁적 인물이나 수도권의 합리적 보수진영을 대변할 인물이 당권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박근혜정부의 보수화에 발맞추는 새누리당의 현주소이다.

야권, 朴대통령의 일방통행에 무기력, 출구 못 찾고 ‘굴복’ 강요당한 민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 정치현안에 있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일방통행에 민주당 등 야권은 장외투쟁이라는 강력한 행동에 나섰음에도 무기력한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견고한 국민들의 지지도의 벽에 꽉 막힌 탓도 크지만 지난 대선 이후 야권지지층의 결집력이 급속히 와해된 때문이다. 야권은 대선패배 이후 9개월 동안 민주당 지지세력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이 진영 내 경쟁관계를 구축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여기에 진보정당 진영도 각자도생을 모색하면서 야권은 크게 3개의 축으로 흩어졌다. 민주당 또한 5.4 전당대회를 통해 김한길 지도체제를 구축했지만 당내 여러 세력을 온전하게 추스르며 힘을 결집해내지 못한 상태였다. 대선패배 책임론 앞에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친노’는 일정 발이 묶인 상태이고 손학규, 김두관 등 당내 대선주자급 인물들도 관망하는 위치로 물러선 상태이다.

이처럼 야권이 새로운 리더십 구축 경쟁에 함몰되는 상황에서 맞이한 국정원 대선개입 정국은 민주당 등 야권에 대선패배의 후유증을 터는 중요한 계기점 마련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야권재편 경쟁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안철수 세력’이 일찌감치 한 발 뒤로 빼면서 투쟁동력 확보에 한계를 보였다.

게다가 민주당 내부적으로 투쟁동력을 마련하는데 한계를 보였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당사자인 문재인 의원이 국정원 정국의 전면에 나서기 어려운 탓이다. 민주당 스스로가 5.4전대를 거치면서 ‘문재인 책임론’을 공식화했기 때문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제기하는 ‘대선불복’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여권은 수세에 몰릴 때마다 민주당에게 ‘대선불복이냐, 아니냐’를 거듭해 물었고 민주당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여권의 공세에 맞서 ‘부정선거 프레임’으로 정면승부를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심의 ‘역풍’을 감당하기 어려운 데다 당내 갈등을 키울 위험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사건은 야권에게 더할 나위 없는 ‘무기’를 손에 쥐여 준 것임에도 야권내 경쟁구도 형성으로 인한 투쟁동력의 한계 때문에 박근혜정부를 뒤흔들며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이석기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으로 야권은 오히려 여권의 역공세에 밀리며 ‘굴복’을 감수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맞이했다.

결국 민주당은 ‘남해박사(남재준 국정원장 해임과 박 대통령의 사과)’를 최선의 카드로 한 여권과의 정치적 해법 모색도 실패했다. 지난 9월16일 박 대통령과의 3자회담에 나서는 김한길 대표는 어떠한 성과도 기대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사건에 대한 야권의 요구 중 어느 한 개라도 들어줄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상태에서 임한 회담이었다.

김 대표가 회담장에 나선 유일한 이유는 추석 밑에 국민들에게 여야 대치정국의 조성의 책임이 박 대통령에 있다는 부분을 확인시키는 절차가 필요했을 뿐이다. 민주당은 추석연휴가 끝나자 여권의 양보는 얻어내지 못하고 ‘원내투쟁’이란 이름으로 의회복귀를 선택했다.

9월 정기국회를 맞아 국회 정상화를 계속 외면할 수만은 없는 상황 때문에 박 대통령에게 사실상 ‘굴복’한 것이다. 민주당은 원내투쟁을 통해 박 대통령의 기초노인연금 공약 후퇴 및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정부여당과 맞서겠다는 전략을 수립해 놓았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투쟁 실패로 인한 내상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민주당에 위안거리라면 안철수 의원 쪽에게 일방적인 수세국면에 몰렸던 야권재편 경쟁에서 어느 정도 대등한 상황까지 반전시킨 점이다. 장기간 이어진 국정원 정국으로 여권에 타격을 제대로 주진 못했지만 야권 내에서의 입지는 강화됐다.

국정원 정국이 본격화하기 전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과의 가상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은 10%선 내외, ‘안철수 신당’은 30%선 내외로 조사됐으나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이번 추석연휴 동안의 정당지지율 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이 21.5%, 민주당은 17.0%로 그 격차를 크게 좁혔다.

‘국정원 정국’으로 맥 빠진 안철수, 승부처 내년 지방선거로 미뤄

안철수 의원의 세력화 행보를 가로막은 것은 ‘국정원 정국’이다. 애초 10월 재보선에서 세력화의 첫 관문 도전이 예상됐으나 안 의원은 이를 포기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자신의 승부처를 2014년 6월 지방선거로 미뤘다.

재보선 선거구가 경북 포항과 경기 화성 단 2곳으로 줄어든 데 따른 것이기도 하나 6월 무렵 불붙은 ‘국정원 정국’으로 세력화의 동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맥이 빠진 탓이다. 지난 4월 재보선 승리로 안 의원은 야권재편 경쟁에서 민주당에 확실한 선기를 잡았음에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답답한 행보를 보이게 된 것이 이 때문이다.

이른바 ‘대화록 공개 정국’, ‘NLL 정국’, ‘귀태 파문’, ‘대화록 실종 논란’, ‘이석기 내란 사건’, ‘3자 회담’ 등 국민들의 주목을 받은 일련의 정치사건들은 모두 ‘국정원 대선개입’이란 핵심이슈 때문에 파생한 것이다. 안 의원은 이러한 정치 흐름에서 ‘방관자’, 또는 ‘제3자’ 포지션으로 밀려났다.

안 의원의 정치지향상 박근혜정부 출범초기부터 여야 간 대치구도가 형성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표방하는 ‘새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 지난 대선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여권에서 제기하는 ‘대선불복’ 프레임을 일정 수긍하는 입장에서 정국 추이를 지켜본 것으로 판단된다.

또 이 과정에서 안 의원은 이러한 ‘제3자’ 포지션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은 것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요동치는 정국 속에서 안 의원이 ‘제3자’의 틀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여러 번의 정치공간이 존재했음에도 애써 거리를 두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온 시점에 서울광장 천막당사를 찾아 김한길 대표를 만났을 따름이다.

안 의원은 여러 번에 걸쳐 ‘제3세력’을 대표해 새누리-민주 양자구도에 파열구를 내겠다는 정치적 포부를 밝혀왔다. 그러나 ‘제3세력’과 ‘제3자 포지션’은 완전히 다르다. 정치적으로 ‘제3세력’을 동원하는 것과 정치 이슈 대응에서 ‘3자 포지션’에 처하는 것은 엄연히 구별됨에도 안 의원은 이에 미숙한 면모를 보였다.

오히려 안 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려면 모든 정치현안과 이슈에서 철저하게 ‘양자 대립 포지션’의 선두에 서야만 가능하다. 이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해내야 하는 과제이다. 이슈 주도력 확보가 의회 내 세력의 밑받침이 없어 어렵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국정원 정국’ 속에서 안 의원의 행보는 이와는 사뭇 다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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