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지키며 소란스럽지 않은 담담한 남북관계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개성공단 남북공동위가 구성되어 첫 회의를 가졌다. 아직 합의는 없지만 또 만나기로 했고 분과위 회의도 갖기로 했다. 필자는 최근 개성공단 관련 회담을 보면서 바야흐로 남북관계가 성숙된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배경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체제가 일합을 겨루면서 보인 남북대화와 남북관계 상호작용은 분명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와도 차별적이고 또한 이명박 정부와도 구별된다.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과 패턴으로 진행되는 최근 남북대화를 보면서 이제 변화된 환경에 걸맞는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새로운 남북관계 방식이 요구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우리가 인정해야 할 중요한 환경 변화는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이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강경해졌다는 점이다. 탈냉전 이후 남북의 화해협력과 관계개선이 진전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지지가 증대되었다면 이명박 정부 시기의 극단적인 정면대결과 남북관계 파탄을 겪으면서 지금 국민여론은 厭北과 嫌北 의식이 우세하고 대북 화해협력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에도 그리 탐탁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탈냉전의 남북관계를 거쳐 지금은 이른바 ‘재냉전’의 남북관계를 맞고 있는 셈이다. 특히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을 거치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김정은 체제로의 3대 세습을 지켜보면서 국민 여론은 어느 때보다도 북에 대해 부정적이고 강경한 입장이 강화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가 ‘격’ 논란을 통해 장관급회담을 무산시킨 것에 대해서도 조평통 서기국장의 장관급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70% 이상이 찬성을 보여주고 있음이 단적인 사례다. 이명박 정부 시기 남북관계 악화는 결과적으로 대북강경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강경 맞대응으로 인해 대북 여론의 악화와 북한책임론이 고착화되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 온 셈이다. 접촉사고를 내고 시비를 가리던 와중에 먼저 욕설을 해대고 손찌검을 하면 한순간에 그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대북 여론 악화가 현실이 되어버린 조건에서는 이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남북관계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너무 좋아하지도, 너무 미워하지도 않는 냉정한 실리추구의 남북관계가 이제는 적절하고 필요할지 모른다. 감정에 치우쳐 한 때는 북을 지나치게 설레임으로 접근했고 또 어떤 때는 북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적대시했다면 이제는 감정과 정서가 아닌 이성과 실리에 따라 대화도 하고 압박도 하고 견제도 하고 합의도 하는 실속형 관계가 필요할지 모른다. 김대중 노무현 시기가 서로 죽고 못사는 신혼과 연애의 남북관계였고 이명박 정부 시기가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증오와 권태의 남북관계였다면 앞으로 남북관계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서로에게 익숙해가는 덤덤한 중년의 부부사이가 오히려 나을지 모른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7차례나 지속되었고 아무런 합의나 성과가 없어도 판 자체를 깨지 않고 만나고 또 만나서 결국은 상호 합의가능한 지점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남북관계의 좋은 사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처럼 가능하면 북의 요구와 트집을 이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처럼 한번의 회담으로 남북대화를 결판내고 끝장내지도 않았다. 한번에 북을 완전 굴복시키려 하거나 단번에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지 않은 것이다.

 개성공단 합의 이후에도 남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하고 북이 이를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연계로 응답하고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先 이산가족 상봉, 後 금강산관광 회담으로 화답한 것도, 장소와 날짜를 서로 갑론을박 주고받는 것도 관계 자체를 파탄내지 않으면서도 무덤덤하게 실속을 차리는 중년의 남북관계 모습이라 할 것이다. 무던하게 서로 대화하고 서로 논쟁하고 가능한 합의지점을 찾기 위해 만나고 또 만나는 데 익숙해야 한다. 과도한 애정과 지나친 분노는 이제 수면 아래로 내려놓아야 한다. 이제 남북은 끈질기게 마주앉아 결국은 합의를 도출해내는 고진감래의 남북관계에 익숙해야 한다.

 신혼과 권태의 시기를 지난 뒤 이제 우리는 담담한 중년의 남북관계를 준비해야 한다. 지나치게 흥분하지도 지나치게 미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저 만나고 또 만나서 대화하고 또 대화하면서 결국 수용가능한 합의지점을 만들어 내고 조금씩 차분하게 천천히 합의사항을 실천하고 이행하면 되는 것이다. 중년의 남북관계는 과도한 애정행각을 벌이지 않는다. 또한 중년의 남북관계는 가정을 깨거나 이혼불사의 부부싸움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정 때문에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가정의 평화를 지켜내고 할 일을 할 뿐이다.

 실리추구의 실속형 남북관계, 중년의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그래서 몇 가지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적 도발과 긴장고조는 가능한 한 억제되어야 한다. 가정이 깨져서는 안되고 집안의 평화가 지켜져야 하듯이 중년의 실속있는 남북관계는 무엇보다 천안함 연평도와 같은 군사적 충돌과 전쟁위기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둘째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신혼이나 이혼이 아닌 중년의 부부는 집안이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그렇다고 애정표현으로 요란스럽지도 않다. 평화로운 중년부부의 가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부인은 남편의 생각과 생활과 주장에 대해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의 생각과 생활과 주장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해야 가정은 평화로울 수 있고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김정은 체제와 박근혜 정부 역시 상대방을 무릎꿇려야 할 굴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대신 대화와 협상의 한 주체로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셋째 중년의 남북관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이나 가정을 깨는 일은 피하고 부부로서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이 다르고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기 힘들어도 그래도 가정은 유지되어야 하고 이혼해서는 안된다. 이번 개성공단 실무회담처럼 입장의 평행선 때문에 합의가 없고 성과가 없어도 회담은 지속되어야 하고 대화 자체가 깨지거나 완전파탄의 남북관계가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크게 흥분하지도 크게 분노하지도 않고 끝까지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지켜내고 부부로서의 할 일을 해내는 것이야말로 현명하고 안정적인 중년의 부부관계이다. 이제 우리 남북관계도 그럴 때가 되었다.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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