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교부 프로그램으로 르완다에 다녀왔다. 1994년의 잔혹한 제노사이드를 극복하고 최근엔 높은 경제 성장률과 1등급의 원조 효과성을 자랑하며 아프리카의 스위스를 목표로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수도 키갈리는 깨끗하고 질서정연해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르완다는 개발독재하에 국가권력의 과도한 개입과 억압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 득표율이 98%인 나라, 재임에 성공한 카가메 대통령의 집권연장을 위해 2017년 임기를 앞두고 벌써부터 삼선개헌이 거론되는 나라다. 대통령 차량 통행을 위해 장시간 교통통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나라. 공공기관과 민간건물에도 어김없이 대통령 공식 사진이 걸려 있다. 실질적인 야당의 존재와 활동이 사실상 봉쇄되어 있기도 하다. 신속한 경제발전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포기한 전형적인 개발독재 상황을 보면서 어딘가 낯익은 우리의 과거 자화상을 떠올리게 한다.

르완다에서 박정희 시대를 연상하는 한편으로 필자는 북한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르완다가 우리와 연관된 코드는 두 가지다. 최근 한국의 봉사단원들이 대거 르완다에 몰려와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이 백명 넘게 활동하고 있고 특히 경상북도가 지원하는 새마을 봉사단원들도 지방에 내려가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가 찾은 교외 무심바 마을에도 새마을회관과 학교를 세워주고 젊은 새마을 봉사단원들이 최장 2년씩 같이 살면서 주민들에게 위생교육과 벼농사 및 유치원 운영 등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역만리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한국식 새마을 운동이 전수되고 우리 정부가 적잖은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고 젊은이들이 대거 봉사와 협력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대북 지원과 협력이 중단된 한반도 현실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오버랩핑되었다. 머나 먼 아프리카 땅까지 지원과 협력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 우리가 왜 가장 가까운 북에 대해서는 아직도 퍼주기 논란과 감정싸움과 상호 비난 속에 지속적인 지원과 협력이 불가능하게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카가메 대통령이 독재를 한다고 해서, 르완다 정부가 민주주의를 억압한다고 해서, 용서 못할 잔혹한 학살이 있었다고 그것을 이유로 우리는 르완다에 지원을 중단하지 않는다. 르완다 시골에까지 우리의 지원과 협력이 가능함을 보면서 대북지원도 실패국가에 대한 국제 지원과 공적개발원조 방식으로 쿨하게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우여곡절을 피해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에 대해서는 유독 분단체제와 남북관계의 특수성 그리고 개혁개방 요구와 버릇 고치기 등을 내세운 채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마저 시작하지 못하는 현실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본말전도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르완다 시골에도 마을회관과 유치원을 지어주고 벼농사를 도와주는데 같은 동포 북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갖가지 이유를 들어 지원을 막는 우리의 현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르완다에서 우리가 꼭 새겨야 할 두 번째 코드는 제노사이드의 역사적 상처다. 20년전 백일 동안 백만 명이 학살 당하는 상상 못할 끔찍한 일을 겪은 르완다다. 소수 부유한 지배 종족과 다수 가난한 피지배 종족 사이의 오랜 적대와 갈등은 순간의 자극에 의해서 종족 학살의 만행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지금은 국가통합화해위원회를 구성하고 하나의 르완다인이라는 단일의식을 심어주고 있지만 민심의 밑바닥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여전히 소주 종족이 정치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또 다시 종족간 피를 말리는 싸움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수백만의 사상자를 낸 한국전쟁의 역사적 상처를 아직 안고 있는 우리가 통일의 과정에서 한쪽이 다른 쪽을 무참히 탄압하고 처벌하고 살상하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아직 나에게는 없어 보인다. 조용하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키갈리 거리에서 대화와 관용이 불가능한 우리네 남남갈등의 폭력적 심화 과정을 떠올리면서 향후 우리의 통일과정이 비평화적 유혈 사태로 변질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단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착잡한 심정으로 한반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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