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온 나라가 망신살이다. 작년 대선 때 불거졌던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포기 논란이 대선 이후엔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이 공개되는 사태까지 확대되더니 급기야 대화록 원본이 실종되는 사상초유의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NLL 포기 논란으로 시작된 정상회담 대화록 파문이 여야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가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정상회담 대화 내용을 놓고 여야가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도 모자라, 지구상 어떤 국가에서도 전례가 없는 바로 5년전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만천하에 까발리고, 그리고 종국엔 그 대화록 원본조차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사실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단연 첫손에 꼽히는 해외토픽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어느 나라가 대한민국과 정상회담을 진정성 있게 임할 것이며 어느 정상이 대한민국 대통령 앞에서 편하게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누굴 위한 NLL 논란이고 대화록 공개였는지 시작부터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첫 단추가 결국은 일파만파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만 것이다.

NLL 논란과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철저히 정치적 목적과 당리당략하에서 진행되었다. 여야 정치세력과 진보보수 진영에게 국가이익과 외교정책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보수성향의 유권자를 결집시키고 반노무현 정서를 재확인하는 데서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만큼 확실한 카드가 없다고 믿었음이 분명하다. 대선 이후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검찰수사로 드러나고 국정조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국정원의 갑작스런 대화록 전격 공개는 정국을 단숨에 NLL 발언 진실게임으로 다시 전환시키게 충분했다. 국정원의 대화록 전문을 확인한 민주당은 국가기록원에 있을 대화록 원본 공개를 통해 새누리당의 부도덕한 정치공세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릴 수 있다고 믿었음이 분명하다. 여야 모두 NLL 포기 발언과 대화록 전문 공개가 향후 대한민국 외교와 남북관계에 어떤 결정적 해악을 끼치는 지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전 세계에 조롱거리가 되고 만 대화록 정국은 시종일관 여야의 정쟁의 카드로만 작동했다. 비극은 거기에서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보수진영에게 노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그 자체로 대북포용정책의 부당함과 실패를 입증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진보진영에게도 대화록 원본 공개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사실왜곡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마지막 카드로 인식되었다. 진보 보수 모두 외교정책의 지속성과 남북관계의 역사성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학에서 외교안보정책은 초당적(bipartisan) 협력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여야의 정치적 목적과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이익과 외교정책의 성공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본이 이럴진대 이번 NLL 논란과 대화록 공개는 여야 모두 정치의 근본을 도외시한 채 눈 앞의 정파적 이익만을 편취하는 데 혈안이 되어버린 결과에 다름 아니다.

우리에게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는 더더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초당적 협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정권교체와 정부출범에 상관없이 남북관계는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록 공개는 그 자체로 향후 남북관계에 불신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다. 북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10.4 정상선언은 한건도 이행하지 않은 채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성과를 부인하려는 의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회담이 난항을 거듭하고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첫출발부터 삐그덕 거리는 것도 사실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무관하지 않다. 끝도 없는 대화록 정국의 미궁에 더 이상 끌려들어가서는 안된다. 대화록 전문은 이미 공개된 만큼 문제의 시작이었던 NLL 포기 논란은 종지부를 찍고 여야 모두 NLL 정국의 출구전략에 합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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