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평화를 기원하며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체제에 논의는 주로 군사안보적 측면의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및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 등의 전통적 영역에 집중되었다. 군사안보 전문가들의 주도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진행됨으로써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의(CBMs) 필요성과 내용, 운용적 군비통제와 구조적 군비통제의 필요성과 쟁점 및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문제, 주한미군과 유엔사 문제 등에 대해서만 평화체제 논의가 한정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이처럼 군사적 차원의 안보 담론으로만 평화체제를 접근할 경우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의한 한반도 평화의 진전이 종합적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군사안보적 구성요소와 함께 본질적으로는 남북관계적 차원의 평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남북의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정치적 대결과 반목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무슨 화려한 평화협정에 서명한다 하더라도 남북의 평화는 불가능하고 당연히 한반도 평화는 자리잡지 못한다. 즉 남북의 적대관계 해소와 정치적 화해협력 그리고 되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한반도 평화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 없이 군사안보적 차원의 평화체제 논의는 그야말로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남북관계가 유동적이고 언제라도 적대와 대결의 긴장된 관계로 환원될 수 있는 구조라면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는 충족되지 못한다. 군사적 신뢰구축을 진전시킨다 하더라도 대결의 남북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루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바로 남북관계일 수밖에 없다. 원론적으로 한반도 평화는 현실의 남북관계에 토대해야 하고 평화의 진전 역시 남북관계의 진전과 연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상호 화해협력이 증대되어야 가능하다. 탈냉전 이후 한반도 평화의 진전은 민족화해의 개선과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측면이 주요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되고 진전되면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일상화되고 이를 군사적으로 보장해주는 신뢰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경협이 군사적 신뢰구축을 이끌어내는 셈이다. 경제협력으로 군사분계선을 통한 남북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남북의 군사적 조치와 합의가 진전되고 다시 군사적 신뢰구축이 남북의 경제협력을 추동해내는 상호 선순환 과정이 바로 남북관계 진전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역으로 남북관계가 적대와 대결이 지속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음도 마찬가지다. 상호 군축, 평화협정 당사자 문제, 평화협정의 조항, 주한미군 주둔 여부, 유엔사 해체 여부, 한미동맹의 변화 등이 적극적 평화를 위한 주요 쟁점이지만 이들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고 매번 제시되는 과제들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아직 그것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고민할 한반도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 핵심에는 남북관계의 현 단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남북이 서로 적대하고 불신하고 반목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 무슨 평화협정이니 평화체제가 가능할 것인가? 상대방의 ‘격’을 내가 판단하고 상대방 수석대표를 특정인으로 지목해서 그가 아니면 회담이 불가능하다는 일방주의와 우월주의가 마치 정상적 남북관계 바로잡기로 인식되는 조건에서는 제아무리 좋은 내용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하더라도 남북의 평화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반도 평화의 진전은 핵심적으로 남북관계의 진전과 맞물려 진행될 수밖에 없다. 관계의 평화 없이 문서나 조약의 평화는 취약한 평화일 뿐이다.

결국 남북관계의 진전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고 증대된 평화는 다시 남북관계 진전을 추동한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시켜주는 상호적 관계인 것이다. 경협이 군사적 보장을 통해 신뢰구축에 기여하고 다시 군사적 신뢰구축의 증대가 남북경협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상호 선순환의 관계가 이를 입증한다. 관계의 평화가 한반도 평화의 토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만으로 한반도 평화가 완성되는 것은 또한 아니다. 경제협력이나 사회문화적 교류가 한반도 평화의 우호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해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2013년 남북의 군사적 긴장고조 상황에서 개성공단은 너무도 쉽게 무력화되고 말았음을 우리는 목도했다. 경협이 군사적 신뢰구축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남북의 적대적 대치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는 충분조건에는 이르지 못하는 셈이다. 남북관계가 한반도 평화의 조건과 환경이 되지만 한반도 평화를 완성하는 도깨비 방망이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정치군사적 대치와 대결은 그 자체로 평화체제 논의를 통해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북핵문제 해결과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 획기적이고 극적인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정치적으로 우선 결심되고 관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적 차원의 법제도적인 평화체제 마련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이를 가능케 하는 남북관계 차원의 ‘내부적’ 평화가 자리잡지 못하면 평화협정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당국간 회담을 무산시키는 이른바 ‘격’ 논란을 지켜보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되는 참담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과연 지금의 남북관계와 우리 내부의 현실은 평화를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상호 적대와 분노 그리고 적개심과 오기로만 가득차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조평통 서기국장이 장관급 회담의 대표로서 충분함에도 이 명백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국 회담을 무산시킨 박근혜 정부에게 절대다수의 지지를 보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대북관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언급할 자격이나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읽어보아도 명백하게 NLL을 고수하는 전제하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제안하고 있음에도 이를 NLL 포기라고 우겨대고 그 주장이 다수로 수용되는 작금의 우리 내부 분위기는 평화협정이 당장 사인된다 하더라도 결코 북한과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고 기어이 북을 타도하고 제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위험한 반평화적 상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을 인정하고 북과 공존하려는 것보다는 북을 굴복시키고 혼내줘야만 올바른 남북관계라고 믿고 있는 우리 내부의 현실,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의 주장마저 이제는 종북세력으로 치부되는 우리 내부의 골깊은 분열과 적대는 과연 한반도에 평화가 도저히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깊은 회의를 갖게 한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도 필요하고 군사적 신뢰구축도 중요하고 경제협력과 사회문화적 교류증대도 필요하지만, 가장 본질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고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남북간에 그리고 남과 북 내부에 켜켜히 쌓여가고 있는 상호 적대와 분노의 악순환을 이제라도 끊어내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절실하다. 관계의 평화 없이, 우리 내부의 평화 없이 법제도적 평화체제와 문서로 보장된 한반도 평화는 공허할 뿐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