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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남북관계에서 우리 정부의 ‘격’은 어느 수준일까?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 북한 김정은 체제 대남사업 ‘총아’

   

이승환(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격' 문제로 남북회담이 무산되었다. 참 한심한 일인데, 대부분의 언론은 북한에 '격'을 요구하는 청와대의 요구가 새로운 남북관계 시도인 것처럼 어처구니없게 보도하고 있다.

청와대는 “외국에 가서는 국제 스탠더드에 맞게 하고, 남북 간 당국자 회담에서는 처음부터 과거에 해왔던 것처럼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행태로 하는 것은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을 장관급회담 대표로 인정하는 것이 정말로 '과거의 굴종행태'(?)를 답습하는 것일까?

강지영은 남쪽, 특히 민간 쪽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종교쪽 교류사업을 하다가,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주로 해외동포사업 책임자로 일했고, 김정은체제가 등장한 이후 조평통 서기국장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조평통 서기국장은 과거 전금철, 백남순, 한시해, 안경호 등 북한의 쟁쟁한 인물들이 거쳐갔던 이른바 대남사업의 핵심직책 중 하나이다. 위원장 공석인 조평통에 부위원장이 여러 명 있지만, 이들은 실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통일부 관계자가 “조평통 위원장, 부위원장보다 하위인 서기국장” 혹은 “남한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통일전선사업을 했던 인물을 우리 통일부 장관을 상대하는 장관이라고 우기는 것” 운운하는 것에는 그냥 어이가 없을 뿐이다.

과거에 그가 어떤 자리에 있었건, 김정은 시대의 첫 조평통 서기국장을 맡은 강지영은 김정은체제 대남사업의 새로운 총아로 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는 똑똑하기도 하지만, 대남사업의 풍부한 경험과 함께 국제적 감각과 인식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를 포함하여 비슷한 과정을 거친 인물과 세대가 향후 남북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싫든 좋든 우리 정부와 민간은 이들 세대와 배경의 인물들과 통일과정을 함께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나이든 노세대의 지위가 남북대화의 ‘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가 강지영을 장관급회담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김정은시대'에 대한 이해부족의 한 전형적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북한으로서도 강지영을 내세운 것은 노림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강지영의 경력으로 볼 때, 우리 정부가 우려하듯이 ‘6.15공동행사’를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북한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굴종과 굴욕을 강요한 것을 가지고 말하자면, 이번 우리 정부의 행태야말로 북에게 굴종을 강요한 경우에 해당한다. 남한 정부가 이제까지의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수석대표로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이름까지 지목해 나오라고 한 것은, 외교 관례로 보면 매우 무례한 일이다. 더욱이 실무접촉에서 북한이 이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도, 청와대가 이를 재차 문제 삼으며 ‘격’을 운운한 것은 지나친 압박이 아닐 수 없다.

6.15공동행사를 부정한 정부가 ‘차관’ 카드로 북한 반발 유도했나

북한의 통전부는 노동당 기구이지 정부조직이 아니며, 북한은 통일부에 해당하는 내각부서가 없다. 그동안 북한이 남북 장관급회담에 ‘내각 책임참사’라는 일종의 무임소장관을 내보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내각 책임참사라는 다소 급조된 무임소장관보다 조평통 서기국장이 나서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책임 있는 선택일 수도 있다.

또 당국자회담 대표 명단을 동시에 교환하면서 처음부터 우리 정부가 차관을 회담 수석으로 명단을 낸 것은 '장관급회담'을 하자고 제의한 정부 스스로 신뢰를 내던진 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이런 결정은 회담이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것이며, 이는 결국 회담 추진의 의지 부족이거나 혹은 어떤 꼼수나 노림수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아마 노림수라면, 6.15공동행사의 추진이 '민간교류' 전면허용과 마찬가지이고 사실상 5.24조치를 철회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것이 틀림없는 정부가 어떻게든 6월 15일을 물리적으로 넘기고 보자는 계산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당국회담 거부를 명분으로 ‘남남갈등’ 운운하며 민간의 개성 6.15공동행사를 부정해온 정부가 ‘차관’ 카드를 던짐으로써 북한 반발을 유도한 것이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이 지나치다 해도, 장관급회담을 하자던 정부가 차관 카드를 던지는 꼼수를 쓴 것은 기본적으로 '품격' 있는 행위라 보기 어렵다.

이번 '격'과 관련된 회담 무산사태는 우리 정부의 ‘이해부족’과 '꼼수' 때문이지, 남북관계 발전의 새로운 시도 등의 평가와는 전혀 거리가 먼 행위이다. '격'은 인물이 아니라,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격'을 말하려면, 개성기업인이나 고성주민들,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외면하고 꼼수부터 앞세운 정부 스스로 먼저 '격'을 갖추어야 한다.

정찬 기자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여론조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외교-안보-통일 등의 현안을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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