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안보, 한국에 경제 의존 않아도 된다는 전략적 판단

2013년 봄의 한반도 긴장은 이미 말로는 전면전 상황과 다를 게 없다. 정전협정 백지화와 남북 불가침 합의 파기를 내세워 핵타격과 워싱턴 불바다 그리고 벌초론까지 내세운 북한, 도발시 원점뿐 아니라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섬멸한다는 한국의 단호한 응징의지는 이미 말로는 전쟁상태다.

 2013년 한반도 정세가 과거와 다른 점은 남북의 대결고조에 더하여 북미간 대립심화가 동일한 시점에 상호 상승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매년 봄에 치러지는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에 대해 북한이 극한 비난과 대남 위협을 해왔음은 연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대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에 북이 강경 저항과 벼랑끝 전술로 대응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는 한미 합동훈련에 대한 북의 대남 도발 위협과 대북 제재에 대한 북의 대미 강경 대응이 상호 결합되면서 사상 유례없는 극단적 긴장고조 상태가 조성된 것이다.
 
 북이 대미 대남 극한 대결을 선택한 배경에는 2010년 이후 북한의 대외전략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탈냉전 이후 미국에게 체제인정과 안전보장을 담보받고 한국에게 경제협력과 경제적 지원을 보장받으려는 북한의 대외전략은 지난 20여년 동안 사실상 성공하지 못했다. 주기적인 선거에 의해 정부가 교체되는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북이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려웠다. 대미 대남관계의 피로감과 불안정성에 더하여 G2 시대 중국의 부상이라는 변화된 국제정세를 토대로 북한은 기존의 대미 안보의존과 대남 경제의존을 벗어나 중국이 오히려 안보와 경제지원의 상당부분을 책임질 수 있다는 현실적 고려를 하게 되었고 2010년 이후 북중관계의 전략적 격상과 북중협력의 심화는 그런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굳이 미국에게 안보를, 한국에게 경제를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북한의 전략적 판단은 이후 대미 대남 대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북한은 2012년 어렵사리 도출해낸 2.29 합의마저도 장거리 로켓발사 강행으로 사실상 포기했고 이후 3차 핵실험과 군사적 긴장고조를 통해 대미위협을 극대화하고 있다. 미국과의 협상을 요구하기 보다는 우선 북한의 핵능력과 군사적 위협을 한껏 올려놓고 보겠다는 전략적 계산이다. 기존의 ‘협상을 통한 확산’에서 ‘확산을 통한 협상’으로 순서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자위적 핵억제력의 핵무기를 넘어 공세적 핵보유 국가로서 핵무기 증대를 꾀하고 있다.
 
 미국에게 협상을 구걸하지 않고 우선 자신의 전략적 자산을 최대화하면서 대미 대결을 극대화하겠다는 북한은 최근 대남전략에서도 수정을 모색하고 있다. 이미 북한은 2010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이후 남북관계에 대한 큰 미련을 접었다. 2011년 이명박 정부의 정상회담 제의도 가차 없이 거부했고 류우익 장관의 방법론적 유연성에도 화답하지 않았다. 2012년 내내 북은 한국 정부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대응했고 대규모 군중대회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동물로 비유하고 사진을 짓밟기도 했다. ‘특별작전행동소조’의 대남 위협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2013년 지금도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기다려보기도 전에 대미대결의 연장선에서 대남 위협과 군사적 긴장고조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대외전략 변화와 연동되어 대남정책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기존 북한의 대남전략은 자신의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일정하게 지속하는 것이었다. 냉전종식과 사회주의 붕괴를 맞아 자신의 체제생존이 절박한 상황에서 북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체제 인정과 경제적 지원을 챙기고자 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북이 일관되게 내세웠던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론’은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대미 대결의 우군이자 경제협력의 지원자로서 한국을 자리매김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북핵문제에서 북미협상을 촉구하고 북미대결을 완화시키는 완충장치 역할을 해왔고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과 남북경협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대미대결의 우군이 아니라 대미대결의 인질로서 한국을 활용하는 전략이 두드러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적대와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 북한은 오히려 남북대결을 고조시킴으로써 미국을 압박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협상틀로 나오도록 하겠다는 심산이다.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아 북미협상을 압박하고 자신이 요구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강요하겠다는 전략이다. 직접 미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기가 아직은 어려운 상황에서 대남 도발과 군사적 긴장고조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절박성을 실감하게 할 수 있다. 연일 계속되는 남북의 군사적 대결고조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평화체제의 필요성을 고민하게 할 수 있다.
 
 또한 경제협력의 지원자로서 한국의 위치도 이제 북한에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한국으로부터 제공받던 경제적 지원과 협력은 중국이 충분히 대체재로서 가치를 갖고 있는 만큼 북은 남북관계에 매달리거나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남북경협이 중단된 공백을 북중경협이 메꾸고 있고 황금평 위화도 개발로 남북경협의 잇점을 대체하고 있다. 한국에게 경제적 지원을 의존하려 했던 기존의 대남전략이 수정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북한 대남전략의 변화는 결코 한국에 고개를 숙이거나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 내내 이른바 기다림의 전략으로 북한의 굴복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오히려 군사적 도발과 긴장고조였음도 그 맥락이다.
 
 결국 북한의 대남전략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대북정책의 변화를 고민하게 한다. 경제적 지원을 절실하게 원할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이 이제는 정설이 아니게 된 마당에 이명박 정부가 주장했던 ‘갑을관계론’은 더 이상 현실적 효용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자의적 갑을관계론에 빠져 북이 결국 굴복하고 나올 것이라는 무모한 기다림의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적극적 남북관계와 전향적 대북정책을 통해 북으로 하여금 한국에게 경제지원을 다시 의존하게 만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강조하는 데 머물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가 먼저 신뢰의 손을 내미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의 대남전략이 대미대결의 인질로서 남북대결을 한껏 고조시킴으로써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보면 우리의 대응은 보다 전략적이어야 한다. 단순히 군사적 차원에서 강 대 강의 억지력과 응징의지를 강조하는 것은 한반도 긴장고조에 오히려 기여하게 되고 북한의 전략적 의도에 말려들어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군은 북의 도발에 대해 사전적 억지와 사후적 응징을 단호한 안보태세로 빈틈없이 준비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정부는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군사력 차원의 안보담론에만 매달려 일촉측발의 전쟁위기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고 우리가 먼저 적극적인 평화체제 정착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군사력에 기초한 ‘소극적’(negative) 평화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전환을 통한 ‘적극적’(positive) 평화가 병행되어야만 안정적인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 남북의 군사적 대결상황에서도 우리가 지금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준비하고 모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근식 폴리뉴스 칼럼리스트 (경남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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