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은 기존 북핵문제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전환시켜놓았다. 1차, 2차와 달리 3차 핵실험은 사실상 북한의 대미 핵전략의 근본적 수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북한은 수세적 차원의 ‘자위적’ 핵억지력을 넘어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공세적’ 핵보유 국가로의 의도를 숨기지 않게 되었다. 2002년 2차 핵위기 당시만 해도 북한의 입장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자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핵보유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원이 달라져 있다. 2010년 농축우라늄 능력을 실물로 공개했고 이는 원자로 활동을 통해 어렵사리 플루토늄을 추출하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원심분리기 가동으로 핵물질의 자동적 다량확보가 가능해진 조건이다. 여기에 더하여 2012년 12월 은하 3호 로켓발사는 미국과 한국 정부도 인정할 정도의 성공으로 평가되었다. 핵물질 다량 확보와 장거리 운반수단 확보라는 변화된 조건에 더하여 이번 3차 핵실험이 북한 표현대로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에 성공한 것이라면 이는 북핵의 위협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또한 3차 핵실험은 중국의 적극 만류와 오바마 2가 행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가 제멋대로식 강경대응의 일환으로 강행한 것이다. 과거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미국을 압박하고 협상장으로 이끌기 위한 위기조성용으로 선택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협상파의 대북정책을 지켜보지도 않고 선제적으로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고 이는 곧 과거의 ‘협상을 통한 확산’에서 ‘확산을 통한 협상’으로 전략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협상에 치중하고 안되면 도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핵확산을 우선 최대화하고 핵보유 능력을 극대화한 연후에 협상 여부를 선택하겠다는 매우 공세적인 대미전략으로 바뀐 것이다.
 
 결국 이번 3차 핵실험으로 북핵문제는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으로 전환되었고 그만큼 상황의 심각성에 더해 해결의 복잡성과 난해함이 가중되었다. 문제는 상황 악화만 한탄하며 감정과 분노만 앞세워서는 일을 그르친다는 점이다. 실제 3차 핵실험 이후 우리 사회와 언론에서는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고 핵위협의 위험성을 우려하며 다양한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현실적 균형감각보다는 감성적 즉자 대응이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핵위기가 해결난망임을 한탄하면서 이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바, 이 역시 감성적 일차적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북핵문제가 질적으로 전환되고 위기가 심화되었다 하더라도 비핵화 목표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핵비확산 체제가 엄존하고 5개국 외에는 핵보유의 공식 인정이 불가능한 구조에서 불량국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 국가로 인정할 경우 이는 우리의 국가전략과 국방정책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대북정책과 국제규범까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아무리 사태가 심각하다 하더라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우리의 정당한 정책목표를 포기하는 것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회피에 다름 아니다.
 
 또한 비핵화 목표를 고수하는 데서 나아가 당장의 비핵화를 위해 이른바 ‘선제타격론’이 거론되는 것 역시 무리한 감정적 논의에 불과하다. 비핵화를 위한 노력은 다양하게 경주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하고 진지한 것이어야 한다. 북핵실험이라는 안보위협에 대응하여 곧바로 선제타격을 언급하는 것은 비핵화를 위해 한반도 전쟁을 불사하는 과도한 주장일 뿐이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 역시 무모할 뿐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당성을 내세워 북한을 비판하고 설득하고 제재해온 마당에 이제 우리도 핵무장을 한다면 그간 우리 주장과 입장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실효적으로도 과연 미국의 핵우산하에서 핵무장을 더한다 한들 그것이 북핵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실질적 효과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오히려 우리의 핵무장은 일본과 북한에 핵보유를 정당화해주는 불필요한 빌미가 될 뿐이다. 더욱이 현실적으로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의 핵무장을 결코 동의하기 어렵기도 하다.
 
 제재만능론 역시 곰곰이 그 실효성을 따져봐야 한다. 안보리 논의를 통해 북한을 정말 아프게 하고 꼼짝못하게 하는 촘촘한 대북제재를 통과시키고 유엔 회원국들의 강제의무조항으로 규정함으로써 북한이 결국 핵포기를 선택하게끔 하는 강력한 추가제재가 가능하다면 아무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제재의 실효성이 여전히 의문이라는 점이다. 금융제재, 선박검색, 수출입 통제, 사치품 제한 등 다양한 추가제재가 통과되더라도 실제에서는 중국의 적극적 참여와 결심이 없으면 북중관계의 지리적 특성상 제재의 실효를 거두기는 어렵다. 이른바 ‘물샐틈 없는’ 제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재만능주의에 빠지면 결과적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는 효과는 미흡하고 오히려 상황 악화와 함께 협상불능으로 되고 만다는 위험성이 있다.
 
 북핵실험 이후 위기와 분노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안과 노력은 여전히 차분하고 현실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비핵화 포기론이나 선제타격론 그리고 핵무장론이나 제재만능론은 각각 속은 시원할지언정 뾰족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결국 다시 돌아서 답은 협상에 의한 노력을 여전히 포기해서는 안된다. 무력 사용으로 핵무기를 탈취할 수 없고, 제재압박으로 핵무기를 스스로 내놓게 하지 못한다면 결국 남은 옵션은 진지하고 통큰 협상을 통해 다시 한번 핵폐기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물론 협상을 위한 판이 너무 커졌고 이미 북미간 신뢰는 바닥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옵션과 제재효과가 별무득이라면 부득불 우리의 선택은 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도록 유도해야 한다. 물론 핵에 대한 우리 자체의 억지력을 확대하고 약속을 어긴 북한에 대해 책임묻기로서 제재는 당연히 가해져야 한다. 억지력과 제재를 이행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또다시 통큰 협상과 대담판을 준비하고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 현실에서 가장 냉정하고 이성적인 접근법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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