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  김근식(경남대 정치학 교수)
▲ 김근식(경남대 정치학 교수)

대선 승리와 당선인의 기쁨도 잠시, 이제는 임기 동안 풀어야 할 무거운 과제를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누구나 위기라고 하는 작금의 시대, 외교안보적 환경 역시 중차대한 전환점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중의 각축 속에 중․일의 패권주의와 우경화가 가속화되는 동북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무사히 평화롭고 안전하게 이끌어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김정은의 북한은 여전히 유동적이고 한반도 평화는 아직도 위험하기만 하다. 정부 출범과 함께 북한의 3차 핵실험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관리하고 해결해야 하는 짐도 떠안아야 한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사라졌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개입력은 축소되었으며 대북 영향력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평화가 훼손되고 안보에 무능했다. 한반도 정세의 주인공이 아닌 방관자와 구경꾼이 되어버린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총체적 실패는 사실 남북관계 중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당선인이 이끄는 새 정부는 최악의 파탄지경에 빠진 남북관계를 올바로 개선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북의 도발을 억지하고 서해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일도 남북관계 정상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북핵과 장거리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증진시키는 일도 남북관계 복원에서 출발해야 한다. 김정은의 북한을 잘 관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변화의 길로 이끌어내는 일도 남북관계 개선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미중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중일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는 동북아 평화촉진자의 역할도 사실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주도함으로써 가능하다. 결국 박근혜 당선인의 첫 번째 외교안보적 과제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일이어야 한다.
 
마침 박근혜 당선인도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이른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핵심 공약으로 내놓았다. 마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듯이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만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신뢰는 말로만 가능하지 않다. 활자화된 공약이 저절로 신뢰를 담보하지도 않는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일관된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도 말로는 손색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상생과 공영을 시작도 못한 채 적대와 갈등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북한의 양보와 선행동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먼저 신뢰를 보여야’ 남북의 신뢰가 가능하다는 논리에 머물러 있다. 2011년 포린 어페어즈에 실린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은 ‘북이 약속을 지켜야’ 신뢰가 가능하다. 대북 인프라 지원과 경협 활성화 역시 비핵화와 남북대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어야 가능하다. 북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신뢰는 시작도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5.24 조치 문제만 해도 북한의 선사과 없이는 상호 신뢰형성이 무망하다. 박 당선인이 밝힌 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갈 수 없다’면 사과와 재발방지 없이 5.24 조치를 풀고 가기는 힘들고 그것은 곧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자리잡게 된다.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도 당장 재개가 아니라 북한의 행동을 선조건으로 요구한다면 남북관계는 처음부터 삐걱거릴 것이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도 대북 제재를 우선하고 북의 선굴복을 요구한다면 신뢰형성은 고사하고 상황악화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안보리 결의 이후 북의 제멋대로 강경대응은 첫단추 매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까칠한 북한을 상대로 힘겨운 기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은 인신공격성 비난이나 대남 강경 조치 등도 서슴치 않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도 남북관계 개선의 가시적 성과는 정부 출범 이후 2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지구상 유례가 없는 북한을 상대로, 박근혜 당선인이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려면 머리 속만의 신뢰구상이 아니라 대결상황과 돌발사태에서도 화해협력이라는 일관된 의지와 행동을 고수해야 가능하다. 신뢰를 위해 북의 행동을 기다릴 게 아니라 박 당선인이 먼저 손을 내밀고 신뢰의 끈을 제공해야 한다. 어렵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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