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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위성발사로 인해 또 다시 한반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예고된 기간에 쏘았기 때문에 북의 위성발사는 ‘기습’이 아니다. 오히려 발사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정보 실패의 무능을 드러낸 남측에게만 기습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북한은 발생한 기술적 결함을 신속히 해소하고 최적의 기상조건에 맞춰 예고된 기간에 발사를 단행했을 뿐이다. 북이 기습발사한 게 아니라 우리가 전혀 대비하지 못한 채 기습당한 것이다. 따라서 기습발사라는 표현은 북한에게 한국 정부의 정보실패 책임을 전가하려는 부적절한 용어에 다름 아니다.

북한의 위성 재발사는 지난 4월 실패 이후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다. 북한 정치체제의 속성상 강성대국 진입과 김정은 체제 공식출범을 대내외에 정당화하는 최상의 이벤트가 바로 인공위성 발사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1998년 이미 북은 ‘고난의 행군’ 종료와 ‘김정일 체제 출범’을 축하하면서 동일한 정치적 목적으로 대포동 1호 로켓을 발사한 바 있다. 따라서 2012년 4.13일 발사된 은하 3호 로켓이 2분여 만에 폭발했고 북한 스스로도 대내외에 실패를 자인한 상황에서 북으로서는 응당 2012년이 지나기 전에 성공적인 재발사를 어떡해든 이뤄내야 했다. 2012년이 강성대국 진입의 원년임은 그들 스스로 공언해왔기 때문에 실패한 위성발사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그래야만 지식경제 강국과 과학기술 강국의 확고한 성과를 주민들에게 확인시킬 수 있었다. 결국 북한의 위성발사가 한국 대선 개입용이라는 분석은 오히려 북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을 강조함으로써 보수 진영의 결집을 노리는 의도적인 침소봉대일 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위성 재발사는 기정사실이었고 다만 미국과의 물밑 조율을 통해 시기 택일에는 일정한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4월 발사 직전에도 방북한 바 있는 미국 관리들이 지난 8월에 다시 평양을 들어간 사실은 분명 위성발사를 놓고 북미간 의견 교환이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더욱이 2011년 북미접촉을 통해 도출된 2.29 합의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떤 종류의 발사도 금지’한다는 1874호 유엔결의안 표현을 굳이 빼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이라는 표현이라고 북이 공개한 것 역시 북미간 저간의 물밑조율을 감지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치체제의 속성상 로켓발사가 불가피하다는 북한 입장과 원칙적으로 반대지만 발사 이후 3차 핵실험만은 결코 안된다는 미국 입장의 상호 교환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정황이다. 예상대로 북한은 2.29 합의에도 불구하고 4월에 로켓발사를 강행했고 미국은 2.29 합의의 폐기가 아닌 ‘중단’(suspend)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안보리 의장성명 이후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2009년과는 달리 ‘핵억제력 강화’라는 표현을 생략하면서 일각의 우려를 깨고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이번 12.12 위성 발사 역시도 북미간 일정한 의견조율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후 진행되는 국면은 규탄과 제재 논의를 일정하게 거치다가 결국은 북미간 대담한 협상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소리 높여 추가 제재를 주장하고 있지만 핵실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로켓발사만으로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추가제재를 단행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실제로도 지금까지 북의 장거리 로켓 발사 자체만으로 제재 결의안을 안보리에서 통과시킨 적이 없다. 사실상 북에 대한 제재조치를 담고 있는 1718호와 1874호는 공히 미사일 발사가 핵실험으로 연결되고 나서 채택된 결의안이다. 2006년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채택된 1695호는 대북경고와 추가악화 방지를 담은 것이었고 실질적인 제재 내용은 담지 않은 것이었다. 또한 당시는 북한 스스로도 인공위성이 아닌 미사일 발사임을 공식인정하기도 했다. 결국 북이 인공위성을 주장하면서 장거리 로켓을 쏘아 올린 경우 추가적인 핵실험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국제사회가 실질적인 제재 조치를 결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도 안보리 논의를 거치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의장성명 정도의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중국은 발사 직후 안보리 결의 위반을 유감으로 표명하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고 추가적인 상황악화 방지를 내세우면서 6자회담의 재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의 위성 발사를 이유로 시진핑의 중국이 기존의 북중관계를 뒤집는 추가적인 대북 제재와 비난에 동의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은하 3호 발사가 북한 스스로뿐 아니라 북미 우주항공사령부와 한국 국방부에서도 공식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이번은 1,2,3 단이 성공적으로 분리되었고 광명성 3호 위성도 일단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1998년 첫 발사 이후 14년만에 북한은 실질적인 인공위성 발사 기술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 셈이다. 사실상의 위성발사 성공은 그 자체로 북한에게 대미 위협카드를 질적으로 증대시키게 된다. 핵물질과 핵무기 보유라는 기정사실에 더하여 이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의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었기 때문에 미국 본토까지를 겨냥한 북한의 명실상부한 핵무기 운반수단의 확보라는 의미에서 향후 북미 협상은 북한에게 힘을 실어준 결과가 된 것이다.
 
북의 위성발사가 사실상 성공으로 평가되면서 이제는 북미간 직접 협상의 필요성과 절박성이 오히려 더 증대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안보리의 강력한 제재가 추가되고 이에 대한 북한의 강경한 맞대응이 교환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통제불능의 긴장고조로 흐르는 것은 새로 출범하는 시진핑 체제와 오바마 2기 행정부 모두에게 이득이 아니라 부담일 뿐이다.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한반도 긴장이 한껏 고조되고 이에 연루되어 미중간 갈등도 첨예화되었지만 결국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및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합의되었고 이후 북미협상이 실제로 진행되어 2.29 합의가 도출되었다. 이번 위성발사 역시도 안보리 논의를 지난 이후에는 제재와 도발이 맞교환되는 긴장고조 국면보다는 일정한 냉각기를 지나고 본격적인 협상 국면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제정세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정보실패와 안보무능에 더하여 향후 대응에서도 돈키호테식의 나홀로 강경대응만을 고집한다면 외교적으로 고립될 뿐만 아니라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복원에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대못박기가 될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제발 남은 임기동안이라도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길 바란다.

- 김근식 폴리뉴스 칼럼리스트(경남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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