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의 변화가능성이 논의되면서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속출하고 있다. 6.28 방침의 존재가 확인되고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도 변화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개혁개방 전망이 앞선 나머지 실제 북한의 현실보다 과도한 기대를 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지난 9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벌어진 개혁 전망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4월에 이어 이례적으로 9월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자 각종 언론은 경제개혁 조치가 발표될 거라는 전망을 쏟아냈고 북한 연구자와 전문가 역시 의견을 함께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최고인민회의는 의무교육 연한을 1년 연장하는 법령 통과 외에 별다른 게 없었다. 경제개혁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최고인민회의를 굳이 소집할 정도로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는 법령 통과였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허탈해했고 망신살이 뻗치게 되고 말았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예상하면서 내부 사정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과도한 기대와 주관적 희망만을 내세워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는 곤란하다. 기대의 과잉은 올바른 분석을 장애하기 때문이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과거의 경험을 살펴본다면 북한의 경제개혁조치가 굳이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발표되거나 실시되지 않음을 파악할 수 있다. 2002년 7.1 조치도 당 방침으로 준비되고 실시되었을 뿐 최고인민회의에서 떠들썩하게 법령통과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만 개혁개방의 실시과정에서 입법적 지원이 필요하면 특구법이나 투자관련 법 등을 통과시켰을 뿐이었다. 애초부터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통해 경제개혁조치를 발표한다는 전망 자체가 북한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던 셈이다.
 
6.28 방침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경제개혁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사실 당 방침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개혁정책 실시로 이어지지 않음을 감안해야 한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는 2001년 10.3 담화가 제시된 후 9개월이 지난 후에야 구체적 개혁조치로 실시된 것이었다. 때문에 6.28 방침이 나왔다고 해서 이번 9월 최고인민회의에 개혁조치가 발표될 것이라는 전망은 성급한 것이었던 셈이다.
 
김정은 체제의 개혁전망이 기대의 과잉으로 흐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해서 향후 경제개혁 전망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또 하나의 편향이다.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개혁조치를 발표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비현실적 전망이었지 김정은 체제의 변화전망 자체가 폐기되어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최고인민회의 개최 자체만으로도 김정은 체제가 과거에 비해 시스템을 존중하고 헌법 기관을 예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 시대에 1년에 한 차례만 형식적으로 개최했던 최고인민회의에 비한다면 김정은 체제는 1년에 두 차례를 열어 입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의무교육 연한 연장을 통과시키기 위해 전국의 대의원이 소집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참석한 것은 김정일 시대와 비교할 때 헌법상 주권기관이자 입법기관에 대한 존중의 자세임이 분명하다. 김정은 등장 이후 당 정치국이 정상화되고 내각의 역할과 권한이 확대되면서 총리의 현지료해가 늘고 국방위원회의 기능이 강조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최고인민회의의 기능과 역할을 최대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헌법과 당규약에 명시되어 있는 제도와 기구에 대한 존중은 분명 김정은 체제의 긍정적 변화임이 분명하다. 여전히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긍정적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에 대한 전망은 철저히 있는 그대로의 북한 현실에 기초해서 냉정하고 엄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막연히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의 과잉이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섣부른 냉소 모두 우리가 피해야 할 편향이다. 조그마한 사소한 점도 침소봉대해서 대단한 변화인양 호들갑을 떠는 것도 자제해야 하지만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도 변화라고 할 수 없다는 선입견도 버려야 한다. 북은 항상 그들이 필요할 때, 그들이 처한 조건과 환경에 맞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실시하고 또 후퇴하고 포기하곤 했다. 막연한 변화불가론과 호들갑스러운 변화기대론 모두 북한 내부의 정확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최근 노동신문 사설에서 ‘생눈길 정신’을 강조하고 선군을 재확인했다고 해서 마치 김정은 체제가 과거회귀를 결정했고 기존 노선을 고수할 것이라고 분석하는 것 역시 일면적일 수 있다. 김정은 체제는 원래 과거로부터의 지속성과 새로운 변화라는 이중적 상황에 놓여 있다. 선대 수령의 유훈을 계승하고 김정일의 그늘에 있어야 하는 한편 김정은 시대에 맞는 새로운 깃발과 노선을 내놓아야 하는 과도적인 상황인 셈이다.
 
따라서 6.28 방침과 다양한 개혁조치를 고민하고 동시에 자주와 선군과 사회주의의 길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특정 시각에서 일면만 보고 김정은 체제의 변화를 과도하게 기정사실화하거나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고 고집하는 것은 그래서 둘 다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뭐든지 지나치면 그르치게 된다.

김근식 칼럼리스트 (경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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