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정상선언이 벌써 5주년을 맞는다. 2007년 남북정상이 합의한 10.4 선언은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과 획기적 개선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였다. 6.15 공동선언을 역사적으로 계승하면서도 기존의 남북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역사적 합의문이었다.
 
10.4 정상선언은 ‘6.15 공동선언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압축적 표현으로 역사적 의미를 정리할 수 있다. 6.15 공동선언에 기초해 지속해왔던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화해협력이라는 6.15 공동선언의 큰 방향을 그대로 지속하되 6.15 공동선언에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을 새롭게 이끌어냄으로써 향후 남북관계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바로 10.4 정상회담이었던 것이다. 2007 남북정상선언은 6.15가 열어 놓은 길을 좀 더 넓히고 포장하고 반듯하게 가꿈으로써 그 길을 따라 가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게 이끄는 이정표였던 셈이다.
 
무엇보다 10.4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군사 분야의 진전을 이뤄냄으로써 정상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가능케 했다. 당시까지 남북관계는 경제와 사회문화가 앞서가고 정치와 군사는 뒤쳐지는 불균형의 모습이었다.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교류가 빈번해진 반면 정치적 화해와 군사적 신뢰구축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비정상적 형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0.4 정상선언을 통해 남북은 상호 적대관계 해소와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그리고 전쟁반대와 불가침 의무를 재확인하면서 앞으로 서해상에서 군사적 신뢰구축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했다.
 
또한 10.4 정상선언은 남북경협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경제협력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존의 경제협력이 대부분 남쪽이 북쪽에 경제적 도움을 주는 일방적 시혜성 대북 지원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면 10.4 정상선언은 남과 북이 서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쌍방향의 투자적 선순환의 경제협력을 지향했다. 6.15 공동선언상에 명기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넘어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이라는 새로운 경협 방향을 명시했고 이는 곧 남과 북이 서로 도움이 되는 상호 윈윈의 경제협력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10.4 정상선언은 그동안 남북관계의 진전 속에서 풀어야 했던 문제들 즉 경협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해 필수조건이었던 한반도 평화 문제와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가 본격 다뤄졌고 그 결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경제협력 방향에 합의를 이루어 냈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군사 분야의 평화 증진과 경제협력의 번영이 동시에 진행되는 정상적 관계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경제협력이 군사적 신뢰구축과 평화를 더욱 증진시키고 역으로 군사분야의 진전이 경제협력을 더욱 확대발전시키는 상호 선순환의 ‘평화 번영’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른바 평화가 경제에 기여하고 경제가 평화를 확대하는 ‘평화경제론’이 비로소 남북관계에 정착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었다.
 
핵문제와 군사 분야에 대한 정상간 합의는 사실 넘기 어려운 산을 어렵사리 넘어선 쾌거였다. 불가침과 군사적 신뢰구축 및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합의한 것은 6.15 공동선언을 한 단계 진전시킨 발전적 합의였음이 분명하다. 경협과 사회문화 교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정치군사 분야에서도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10.4 선언은 열어주었다. 경협의 내용과 수준도 기존 6.15 시대를 넘어 보다 다방면적이고 호혜적이며 구체적인 모습을 담았다. 경제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킨다는 평화경제론은 서해바다의 NLL 문제까지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 이정표였던 10.4 선언은 임기말에 합의되었다는 점에서 불안했다. 북핵문제에 밀려 2.13 합의가 나온 연후에야 겨우 정상회담의 현실적 가능성이 가시화되었다. 합의해놓고도 이를 실천이행할 시간이 너무 짧았다. 더더구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10.4 선언은 꽃도 펴보지 못한 채 시들고 말았다. 2008년 10.4 선언 1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10.4선언이라는 꽃에 물도 주지 못한 채 시들고 말았다’고 아쉬워 했다.
 
그 후 지금까지 5년 동안 한반도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남북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했고 북한은 격렬하게 반발했고 이명박 정부는 그러한 북한을 더더욱 강도높게 압박하고 봉쇄했다. 결국 남북은 군사적 충돌과 적대적 긴장관계로 최악의 파탄지경으로 치달았다. 10.4 선언이라는 기차는 떠난 지 오래되었고 한반도 정세는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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