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 이탈 방지효과냐...보수층의 결집 이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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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과 유신에 대해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말로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등장으로 대선판도가 요동치는 가운데 과거사 문제로 더 이상 얽매여 있을 순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탓이다.

그러나 박 후보가 이날 기자회견으로 과거사 논란에서 탈출하고 갈 길 바쁜 대선행보에 재시동을 걸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박 후보 자신이 이날 18대 대선국면에서 아버지 ‘박정희’의 역사적 정통성을 공식적으로 부정한 것 자체에서 머물 지 않고 연속적인 파생 이슈제기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벌써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박 후보의 사과에 대해 ‘만시지탄’이라고 ‘환영’을 뜻을 밝히는 데 머물지 않고 ‘진정성 있는 실천’이란 후속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즉 박정희 전 대통령 유신통치체제 자체의 ‘법적 청산’을 촉구하며 박 후보를 한 발 더 압박하는 형국을 취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로선 문제가 자신의 이번 사과발언으로 매듭되길 원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정성호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유신헌법의 법적 청산’을 주장했다. 정 대변인은 “유신헌법 40주년을 맞아 (유신헌법에 대한) 국회차원의 무효화 결의안이 필요하다”면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박근혜 후보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이 아니다. 헌정 파괴행위를 옹호하는 일반적인 상식과 이성의 회복을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 후보가 말하는 과거사는 결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재사”라며 “유신체제를 지탱해온 긴급조치 1, 4, 9호는 최근 위헌판결을 받았고 인권유린과 재산피해와 관련된 소송들이 지금까지도 줄줄이 대기상태”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신헌법이 우리나라 사회 곳곳에 미친 폐해를 청산하자고 제안했다.

박 후보에 대한 이러한 후속조치 요구는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박 후보를 곤혹스럽게 만들 것은 분명하다. 박 후보 자신이 헌법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한 유신통치에 대한 법적, 역사적 청산 요구를 거부할 경우 뒤따르는 것은 사과의 ‘진정성’ 논란 밖에 없다. 이는 곧 대선투표일까지 박 후보를 괴롭힐 이슈가 된다는 뜻이다.

중도층 이탈 방지효과 보다는 오히려 ‘산 너머 산’이 될 수도

박 후보의 이번 사과발언은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가 대선후보로 등장하면서 대선 3자구도가 구축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4년간 유일한 미래권력으로 정치판에서 독보적인 철옹성을 형성했지만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정통야권의 후보와 중도지대를 대표하는 유력한 대선주자 등극하면서 지지층이 크게 흔들린 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진 인혁당 논란은 그대로 악재로 반영되며 박 후보의 지지도가 하락하며 다자구도에선 우위를 유지했지만 문재안-안철수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는 뒤지는 상황을 야기했다. 이에 박 후보는 문-안 양 후보의 협공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으로 5.16과 유신의 역사성을 공식적으로 부정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발표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는 야권단일후보 안철수 후보의 양자대결 조사 결과, 안 후보가 1.9%p 상승한 46.9%를 기록했고, 박 후보는 3.2%p 하락한 45.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두 후보간의 격차는 2.8%p로 나타났다. 8월 3째주 이후 5주만에 다시 안 후보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박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양자대결 조사 결과, 문재인 후보가 5.3%p 상승한 47.0%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박 후보는 3.4%p 하락한 45.0%로 나타났다. 두 후보간 격차는 2.0%p로 나타났다. 총선 이후 처음으로 문재인 후보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여론 흐름은 3자구도 형성에 따라 박 후보의 대선가도에 적신호를 밝힌 것으로 박 후보는 발 등에 떨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에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박 후보의 이러한 선택의 성공여부는 미지수다. 먼저 중도층의 이탈을 막아내는데 안철수 후보가 점한 중도포지션의 벽을 뚫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을 접수한 문재인 후보 또한 야권지지층에서 또한 중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향후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진정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조차 있다. 현 시점에서 과거사 관련 파생적인 이슈제기는 불가피하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 의혹이 한 가지 예이다. 박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는 끝난 것”이란 입장을 유지한다면 자신이 이미 행한 사과발언 마저 퇴색된다. 오히려 ‘산 너머 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다름 아닌 대선국면이 가지는 특수한 정치 환경 때문이다. 대선국면에서 대통령 후보들은 국민들의 칼날 같은 검증대에 올라선 상황이다. 대선국면이 아닌 시기엔 그냥 넘어갈 사항도 폭발적인 이슈가 된다. 박 후보의 과거사 이슈가 여기서 종결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갑제 “배신당한 보수, 기권하는 이 많아질 것”

결국 박 후보는 달아나는 중도층을 잡는데 한계를 노출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대선구도는 3자구도에 매몰돼 문-안 단일화 협공에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박정희’는 한국 보수세력의 기둥이란 점에서 보수층의 결집도를 떨어뜨리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날 보수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박 후보를 향해 “아버지와 조국에 침을 뱉은 박근혜의 반역사적 사과”라며 “좌익들은 박근혜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이제는 대통령 후보직에서 물러나라고 할 것이며 배신당한 보수는 기권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보수지지층의 이완 가능성을 우려했다.

‘박정희’가 한국 보수세력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역사성을 부정한 박 후보의 이번 기자회견이 보수지지층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로선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아도 대선국면을 타고 넘어기가 쉽지 않지만 사과를 통해 박정희란 보수의 역사적 상징을 부인하는 것 또한 이번 대선국면에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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