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반도 정세가 간단치 않다. 이미 남북관계는 최악의 파탄지경이고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군부장악 마지막 수순인 리영호 해임과 김정은 원수칭호 부여를 놓고 청와대는 정변이라도 기대한 듯 긴급회의를 갖고 요란을 떠는가 하면 대통령은 ‘통일이 정말 가까이 오고 있다’는 과도한 희망만을 앞세웠다. 남은 임기동안 남북관계는 아무런 희망을 갖지 못할 듯 싶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권력승계 완료와 내부정비 이후에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위원장 사망 이후 넉달만에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마무리하고 아버지의 핵심 리영호까지를 해임하면서 김정은 체제는 탄탄한 내부권력 토대를 신속하게 다지는 데 성공했다. 권력문제에 대한 정비가 끝나고 김정은 체제는 변화의 활발한 몸짓을 보이고 있다. 6.28 방침에 따다 경제정책의 변화를 시도하고 군부의 역할 감소와 내각의 권한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지도부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정책적 모색이 이뤄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울러 김정은 체제는 대외적으로도 적극적 변화의 계기를 찾는 모습이다. 장성택의 방중으로 북중경협을 한 단계 진전시키고 이를 통해 북한경제의 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김정은의 첫 번째 해외방문지로 중국이 꼽히고 조만간 북중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정세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과의 적극적인 협력과 함께 최근엔 러시아의 대북 구애 소식도 들려온다. 9월에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될 예정인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상회담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본과도 오랜만에 당국간 회담을 갖고 유골협상을 벌였다. 로켓발사 이후 소강상태인 미국과도 싱가포르에서의 비공식 접촉과 뉴욕채널의 가동 소식이 들려온다. 대내적 권력확보를 마친 이후 김정은 체제는 본격적으로 정책변화를 모색하고 대외관계 진전에 힘을 쏟는 형국이다. 오직 남측과의 문만 굳게 닫혀 있다. 
 
북한의 대내외적 적극 행보와 대조적으로 임기 말의 이명박 정부는 총체적 외교 실패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대책없이 오기와 고집만으로 일관한 탓에 남북관계는 이제 대화를 애원해도 소용없는 파탄지경이 되어 버렸다. 수교 20주년을 맞는 한중관계는 대북정책의 이견을 바탕에 깔고 탈북자 문제와 김영환씨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사상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한일관계 역시 대통령의 독도방문 이후 퇴로 없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한미동맹에 올인했지만 정작 ‘아시아로 복귀’하려는 미국에게 이명박 정부의 좌충우돌 외교실패는 미국에게도 정치적 부담이 되어 버렸다. 북한과 2.29 합의를 도출하고 로켓발사 직전에도 미 백악관 관리가 방북하고 최근에도 비공식 접촉을 지속하고 있는 북미관계가 과연 한미동맹의 성과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남측을 우회해서 활발한 대내외 변화를 시도하는 김정은 체제의 작금의 행보는 기막히게도 10년 전 한반도 정세와 너무나도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 역설적인 ‘거꾸로’ 모습은 남북관계 파탄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작금의 외교적 고립이 결과한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2002년 한반도는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다. 이미 2년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민족화해의 증진과 남북관계 개선을 이뤄냄으로써 당시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 정세변화를 추동하고 견인해낼 수 있었다. 화해협력의 한반도 정세가 조성됨으로써 2000년 말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해 조미공동코뮤니케 합의가 도출될 정도로 북미관계도 진전의 계기를 맞기도 했다. 2002년에는 임동원 특사가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남북관계 진전을 더욱 가속화하는 한편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유례없는 적극적 개혁적 행보와 조치를 실시해갔다.
 
2002년 이른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허용하고 기업의 자율권을 대폭 확대했다. 시장화 개혁조치의 첫걸음이었다. 북한의 변화 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해 9월 신의주 행정특구를 발표하고 사실상 홍콩과 같은 획기적 개방을 시도했다. 외국인이 장관과 경찰청장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할양 수준의 대폭 개방이었다. 북일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일은 납치문제를 시인 사과하는 고백외교를 진행함으로써 고이즈미 총리와 북일관계 개선에 합의하는 평양선언을 도출하기도 했다.
 
2002년 한반도는 탈냉전 이후 최고 정점의 화해무드가 조성된 해였다.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대외정세를 기반으로 북미관계, 북일관계가 획기적 진전의 모멘텀을 확보했다. 우호적 대외환경은 결국 북한에게도 사상 초유의 개혁개방을 가능케 했다.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시장화 개혁 조치를 실시하고 신의주를 개방해서 경제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케하는 한반도 정세 호전의 토대는 다름 아닌 남북관계 개선이었고 때문에 정세 주도권은 한국이 쥐고 있었다. 2002년 화해의 한반도 정세와 당시 북한의 개혁개방은 김대중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이 바로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한반도 문제에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대외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결국 북한의 적극적 변화를 도출해낸 쾌거였던 셈이다.
 
이와 비교해보면 지금 2012년의 한반도와 북한의 행보는 남북관계가 사라진 자리에 한국이 배제되고 북중관계가 강화되고 북한이 주도하는 변화 형국임을 알 수 있다. 북중 경협을 통해 북한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북한식 개혁개방 시도에 남측은 속수무책으로 뒷짐지고 구경만 해야하는 형국이다. 한반도 정세 변화에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소외될 판이다.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변화는 남북관계를 통해 북한에게 변화 출구를 제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북한 스스로도 중국의 도움을 받는 경제회생과 변화시도는 내켜하지 않는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개보수 사업을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중국이 신의주 평양간 고속도로 개보수를 제의했지만 거절했다는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중국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북중관계를 통해 대외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것은 우리의 외교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개입력과 주도권을 상실하게 만든다. 한반도 평화 증진과 향후 통일과정을 위해 우리는 남북관계가 중심이 되는 정세변화와 북한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 북경으로 동경으로 북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북관계 진전으로 서울이 평양을 이끌어 내고 서울이 나서서 워싱턴을 열고 북경을 설득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사라진 2012년의 한반도, 한국이 빠진 2012년의 북한변화를 보며 유난히도 2002년의 한반도를 떠올리게 된다. 그 해 남북관계는 정세를 이끌었고, 그 해 한국은 북한변화를 추동해냈다. 아쉽기만 한 201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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