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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의 행보를 놓고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거침없는 행보와 감성적인 모습, 아버지와는 다른 공개적이고 투명한 리더쉽 스타일을 과시하면서 안팎으로 변화의 기대를 낳고 있다. 물론 겉모습에 그친 제스추어일뿐 실질적인 변화는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김정은의 북한도 결국 변화를 모색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유훈통치와 아버지의 구속력으로부터 곧바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결국 김정은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비전과 깃발을 내세워야 하고 이는 과거와의 차별성 및 기존과의 변화를 의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격적으로 단행된 리영호 총참모장 해임도 사실은 과거로부터의 벗어나기라는 관점에서 해석 가능하다. 물론 최룡해와 장성택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훈구 인척 세력이 핵심 군부 세력을 제압했다는 권력 엘리트 내부의 힘겨루기로도 설명될 수 있고, 선군정치하에서 과도하게 비대해진 군부의 기세를 제압하고 상대적으로 내각과 당의 기능을 강화하려는 시스템상의 의도로도 설명가능하다. 군에 집중된 경제적 특권을 시스템에 따라 당과 내각에 분산하려는 정상화 과정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체제의 군부 후견인으로 간택한 인물을 권력승계 완료 세달여 만에 전격 해임한 것은 과거의 구속력과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과정으로 결과론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리영호 해임과 김정은 원수칭호 부여라는 일련의 절차가 아무런 저항과 잡음 없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사실은 이제 김정은 체제가 군부에까지 확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음을 의미하고 보다 신속하게 김정은식의 권력체계와 엘리트 집단을 구축하려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정군에 대한 완전한 장악을 전제로 이제 김정은은 본격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리더쉽 스타일의 변화를 넘어 실질적 정책변화를 구상하고 있음도 포착된다. 이른바 6.28 방침의 문건이 확인되면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경제개혁의 구상을 가다듬고 있고 TF 팀을 꾸려서 실제적인 내용을 시도해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붕괴와 내부 정변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장조차도 경제개혁 팀이 가동되고 있음을 시인한 바 있다.
 
 최근 장성택의 방중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북중경협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확실한 증거로 보인다. 황금평과 위화도 그리고 나선지구의 북중 협력을 논의하고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조언을 구하는 것 자체가 일단은 김정은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경제회복과 경제발전을 위해 김정은 나름의 대외경제협력 구상을 그려가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결국 김정은 체제의 최근 대내외 행보는 어떤 식으로든 북한이 변화를 모색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긍정적 해석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 모색이 의미있는 실질적 변화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객관적 대외조건이 우호적으로 조성되어야 한다. 북한의 변화 의도가 존재한다 해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대외적인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과거 북한의 개혁개방 시도의 경험은 당국의 주체적 의지가 번번이 객관적 정세와 조건의 악영향으로 실패했다. 탈냉전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야심차게 시도했던 1991년의 대외개방 노력은 직후에 불거진 핵위기로 인해 북미 대결이 조성되면서 좌초되고 말았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선포라는 북한식 변화의 시도는 1992년에 부각된 1차 북핵문제로 인해 북미갈등과 한반도 위기라는 비우호적 대외환경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북한의 변화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이 시도했던 두 번째 개혁개방 역시 객관적 대외조건의 부조응으로 실패하고 만다.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허용하고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획기적 실험을 시작했다. 신의주 행정특구를 선언하고 홍콩식 실험을 수용하려고 했다. 2002년 정점에 달했던 김정일의 변화 시도는 그러나 그해 10월 켈리 차관보의 평양방문으로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면서 또 다시 무력화되고 말았다. 다시 한반도는 위기가 조성되었고 북미관계는 수년간의 대결과 대화, 합의와 결렬을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결국 탈냉전 이후 김정일이 모색했던 두 번의 변화 시도는 주체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라는 위기조성과 북미갈등이라는 대외환경의 악화로 인해 좌초되고 실패하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김정은 체제의 등장과 함께 북한의 세 번째 변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김정은이 개혁개방으로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선택을 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기왕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향후 김정은 체제의 변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변화로 북한을 이끌기 위해서는 우호적 대외환경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매우 긴요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대외환경의 개선은 남북관계에서 비롯되고 종국에는 북미관계 개선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중단상황을 우리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변화를 모색하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남북관계 파탄상황이 지속될 경우, 과거 북미관계 대결이 북한의 변화실패 요인이었듯이 지금의 남북대결 역시도 한반도 긴장고조의 원인이 되고 구조적으로는 비우호적 대외환경의 조건이 됨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결국 장애하고 말 것이다. 김정은이 북중협력을 시작으로 나름의 변화구상을 실천해갈 때, 정작 우호적 대외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탈냉전 이후 세 번째 북한의 변화시도는 또 다시 좌절될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개혁개방은 그만큼 더 미뤄질 것이다. 남북관계 파탄을 방임하고 북미관계 개선을 반기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역사 몰인식이 한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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