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안, 법사위 상정 후 '단독표결' 할 것

민병두 열린우리당 기뮌㎰坪揚?국보법 폐지안을 포함한 4대입법에 대해 '연내 단독표결 처리'를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국보법 폐지안이 법사위에 상정되면 '단독 표결처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기획위원장인 민병두 의원은 국보법 폐지안을 포함한 4대 입법에 대해서 "단독 표결처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연내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병두의원은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일”이라며 "한나라당이 국회에 안들어오면 단독 표결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론분열의 측면이 있는 4대법안을 장기간 끌고 갈 수 없다.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면서, 특히 "4대법안이 연내처리 되야지 내년부터 정국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4대입법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기획위원장 인터뷰 전문

또한 "'국보법 폐지안의 법사위 상정'이 되면 즉시 표결 강행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국보법 법사위 상정까지만 하고, 표결강행처리는 하지 않는다는 그간의 열린우리당 공식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다. 그는 "강행처리와 표결처리는 분명 다르다"고 전제하며 국보법 폐지안 상정은 곧 '본회의 단독 표결처리'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12월 임시국회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열린우리당 중진급 초선의원으로 불리는 민병두 의원의 이같은 입장은 여당의 임시국회 전략을 가늠케하는 대목이다.

정기국회가 끝나고 임시국회가 시작되는 첫날인 지난 10일 가진 민병두 의원과 'e윈컴 정치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한나라당의 봉쇄투쟁, 대안없는 투쟁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단 한나라당이 (국회에) 들어와야지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타협의 가능성은 남겨놓았다.
그러나 그는 만일 한나라당이 국회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단독 표결처리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단호히 말했다.

민병두 의원은 한나라당에 의해 폭로된 ‘이철우 의원의 노동당 가입’ 사건으로 인해 국보법 폐지안을 포함한 4대입법 모두에 대해 당내에서 '단독표결 처리' 강경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한 17대국회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민 의원은 이번 17대정기국회 평점을 묻는 질문에 “개별 의원들의 입법활동 성적표에 대해 얘기한다면 80점 이상일 수 있는데 타협의 정치 문화인 집단으로의 국회를 본다면 65점이나 60점 정도”라며 비교적 호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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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우 의원 사건으로 당내 강경기류 굉장히 확산되고 있어

    국가보안법과 언론관계법, 사학법 개정안, 과거사 진상규명법을 의미하는 ‘4대 개혁입법’에 대해 민병두 의원은 “연내 처리”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4대법안에 대해 한나라당과 타협이 안되면 "단독 표결처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에 대해서 “얼마전 조선일보에서 ‘한나라당은 무엇무엇을 하자 하는 당이 아니라 무엇무엇을 하지 말자만 하는 당’이라고 비판했다”고 전하면서 “하지말자 당이란 것이 분명히 드러나면 결국 한나라당도 여론 비판에 부딪쳐 일정한 양보를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딜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한나라당의 '타협 가능성'을 내다봤다.

    그는 국보법을 제외한 언론관계법, 과거사법, 사립학교법 등 3개 법안에 대해서는 한나라당과 "타협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한나라당도 국보법 이외의 3개법안에 대해서는 대안이 있는 만큼 국회논의를 통해 여야 합의하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를 계기로 이를 계기로 국보법에 대한 처리 역시 연내에 마무리 짓겠다는 열린우리당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민 의원은 최후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의 단독처리’에 대해서도 그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그는 3개법안 타협도 "한나라당이 국회에 들어와야 타협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이 임시국회를 계속 거부할 경우 사실상 이 또한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는 “강행처리와 표결처리는 다른 것"이라며 "강행처리는 저쪽이 물리적으로 저지하는데도 우리도 몸싸움으로 통과시키는 것이고 우리는 표결처리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한나라당이 국회에 안들어오면 단독처리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국보법 폐지안을 포함한 4대입법이 모두 '단독 표결처리 강행'이라는 12월 임시국회 입장을 분명히 했다.

    4대입법 처리에 있어서 정기국회 종반부에는 '3+1'의 국보법 폐지안 연내처리 유보 방침 등 강경자세가 조금 누그러졌으나 최근 다시 여당내 강경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이철우 의원 사건’이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과 일말의 타협가능성조차 없는 '국보법 폐지안'에 대한 본회의 단독 표결처리에 대해 "이철우의원 사건으로 그런 기류가 굉장히 확산되고 있다"며 국보법 폐지안이 법사위에 상정되면 이 역시 '단독 표결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약한 집단”

    민병두 의원은 이철우의원 사건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저 사람들은(한나라당 의원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약한 사람들이고, 약한 집단”이라고 규정하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문제제기 한 날 본회의장에서 이철우 의원이 아주 진지하고 담담하게 설명했더니 한나라당 의석에서 소리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람(이철우 의원)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깊이와 철학적 진지함이 드러나니 조용해 진 것이고, 어떤 사람보고 ‘너 과거에 그랬는데 지금 이렇게 변했느냐’ 이렇게 얘기하는데 다른 이득 때문에 자기 신념을 바꿨다면 그런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인생을 살면서 성장하면서 자기 생각을 발전시킨 것 자체에 대해 ‘너 왜 생각 바꿨냐?’ 하는 비판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장을 맡았던 민병두 의원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이의원의 '공천 책임'과 관련 "당내에서 공천논란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덧붙여 "잘은 모르지만 이철우 의원에 대해 과거 그런 논란이 있었다는 것은 언뜻 들었고, 자세한 내용은 모르나 항소심 판결문이나 대법원 판결문에 있는 것처럼 간첩죄로 복역한 적이 없고, 노동당원으로 가입한 적이 없다면 큰 문제가 아니지 않겠나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한나라당에 대해서“자꾸 옛날로 돌아가려는 것은 사멸해 가는 공룡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고, 이것을 본 밖의 보수우익세력들 중 일부가 뉴라이트 운동을 만들어 자꾸 한나라당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보법 개정, 행정수도 이전 제한적 찬성 등 입장을 보인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는 “박 대표는 조금 왼쪽으로 와야 겠다고 생각을 해서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움직이려 했던 것 같다”며 “우리에게 우호적이라기보다는 본인이 갖고 있는 모호함”이라고 진단했다.

    천정배 원내리더십, "4대입법, 선명한 전선규정 올바른 선택"
    4대입법 강조안했어도 한나라당 지연전술 구사했을 것

    민병두 의원은 현재 당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당지도부다. 때문에 4대 개혁입법이 최대쟁점이었던 17대국회를 이끌고 있는 현 원내지도부의 지도력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주문에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천정배 원내지도력'과 관련, 여권 지도부내의 의견충돌, 입장 번복, 당론 수렴미숙 등으로 당력을 분산시키고 야당과의 협상에서 주도권 상실 등 원내지도부의 지도력 부재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었고, 이로인해 결과적으로 '민생국회' '상생국회'를 표방한 17대 정기국회가 상쟁의 국회로 치달아 결국 민생법안 처리까지 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이 끊이지않고 있다.

    그러나 민병두 의원은 이같은 혹평에 대해 "그렇게 왔다갔다 한 건 아니고 애초 제안 자체가 조건부였다"며 "조건부 제안을 저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원안대로(4대법안 연내처리)간 것"이라고 전면 부인하며, 지도부의 전략적 오판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4대법안을 패키지로 묶어 전선을 확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민 의원은 "정치공학에서는 상대를 최소화하고 나를 최대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라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기치를 분명히 한다는 것도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천정배 대표가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4대 입법이라 얘기하지 않아도 더 낳아졌을까? 얘기 안 했어도 저쪽(한나라당)에 의해 다시 규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그렇다면 어차피 우리가 적극적으로 규정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 다른 평가는 4대 개혁입법을 무리하게 강조하다 보니 민생경제와 관련된 법안들 조차 처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금 국회에 표류하고 있는 법안들이 860여개가 넘는 상황에서 4대 입법으로 인한 거대 여야의 정면출동은 4대 법안을 우선적으로 내세웠던 열린우리당의 전략적 판단실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민병두 의원은 “어차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정기국회가 파행으로 된 상황에서 이제는 전략적 실수 여부를 논쟁하는 것보다 지금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가 초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민 의원은 “4대 입법 때문에 다른 법안(민생법안)이 늦춰졌다고 보진 않고, 한나라당은 4대 법안이 없다 하더라도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결국은 뭘 걸어서라도 지연전술을 구사했을 것이고, (이것은) 과거 정치사에서 일정정도 야당의 생존 방식, 투쟁술이기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시민 의원이 제안한 '국보법 폐지 크로스보팅을 위한 전원위 소집'에 대해 '합리적 방법이 아니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는 한나라당에서는 자신들을 교란시키는 유인책이라 생각할 수 있고, 당내 강경 폐지론자들에게는 '적당히 털고 끝내려는 우회로이고 명분을 찾는 것'이라고 의심받을 수있다"며 "양측에서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 방법이 될 것인지는 자신 못한다”고 말했다.

    개별의원 입법활동 80점, 타협의 정치활동 65점
    튀는 발언에 선배 동료 칭찬듣고 3-4개월만에 과거로 회귀

    17대 국회의 가장 큰 특징이자 변화는 전체 60%가 넘는 초선의원의 등장이었다. 열린우리당은 108명의 초선을 보유한 70%가 넘는 초선의원들이 있다. 민병두 의원 역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초선 의원이었다. 그러나 민병두 의원은 초선의원이 중심이 된 17대 국회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입법활동에서 80점, 국회가 타협의 정치를 하는 측면에서는 65점을 평가한 민병두 의원은 정치인들의 철학적 감각이 둔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17대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던 정치개혁, 변화의 결의가 급속도로 후퇴한 것에 대해 그는 도올 김용욱 교수의 말을 소개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하고 얼마 전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전두환이란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던 수 많은 학생들이 저런 절대 악이 있으니 선한 일을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라고 말한 뒤 “절대 악이 없어지고 개혁의 시대로 가니 철학적 토대가 약한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개혁에 대한 확신이 스스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동료 의원들에 대한 평가도 날카로왔다. 그는 “하루, 이틀, 한달이 지나고 본회의장에서 조금 튀는 발언을 해보니 선배나 동료의원이 칭찬하고, 그렇게 하니 언론이 써주고 하다 보니 3-4개월도 안 돼 빠른 속도로 과거로 회귀한다”고 지적했다.

    민병두 의원은 기성정치에 물들어 가는 모습에 대해 한나라당 책임론을 우선 지적했다. 그는 “제가 열린우리당 이어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에 시작된 것”이라고 말한 뒤 “한쪽에서 퇴행하니까 이쪽도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다 보니 일부 초선의원들이 거기에 대응하고, 점차 국회는 경색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과거 국회로 되돌아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7대국회에 첫 입성한 민병두, 그는 '국가적 아젠다를 만드는 진짜 국회의원'의 꿈을 안고 있는 정치초년생이다.

    정치권 입문하는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최근 두드러지는 추세로 ‘민주화 운동 세력’과 ‘언론인’ 출신을 꼽을 수 있다. 당내에서도 ‘중진급 초선’으로 꼽히는 민병두 의원은 이 두가지 경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이색 정치인이다.

    과거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이후 학생운동 세력의 치열한 이념논쟁이었던 무림-학림 노선투쟁에서 성대출신의 민병두 의원은 ‘학생운동의 선도적 정치투쟁’을 주장했던 학림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전민학련 사건으로 검거되기도 했으며, 1986년에는 CA(제헌의회) 그룹의 중앙위원 활동으로 또 한번 수배-검거 생활을 했다. 이 당시부터 그는 운동권의 기획-전략통 역할을 했던 것이다.

    80년대 '골수운동가'였던 덕분에 그는 치안본부 대공분실과 안기부 지하실에서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모진 고문을 겪기도 했다. 고문은 그만 당한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부인도 안기부의 '살기(殺氣)'에 포로가 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병두 의원은 ‘언론인’으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을 거치면서 지난 총선 직전까지 현장 언론인으로 '밖'에서 정치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총선 직전 전격적으로 정동영의장으로부터 '함께 할 것'을 제안받고 잠도 못자고 몇날을 고민 끝에 동참키로 결정하고, 지금은 정치권 '안'에 몸담고 있다.

    그의 발탁배경이 혹시 '문화일보의 노무현후보 1위 여론조사' 때문이라는 세간의 궁금증에 대해 "그때는 없었다"며 "2003월 미국에 가서 2002년 2월3일에 들어와 정치부장 1년 한 다음 여기들어왔다"고 상세히 밝혔다.

    민병두 의원은 정계진출 이후의 소회에 대해 “하도 바빠서 소회 같은 건 가질 틈이 없어서 안 떠오른다”며 웃어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 정치를 하면서 행복한가? 기자만큼 사회에 공헌하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국회의원은 무슨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만큼 반응 속도, 효과를 산출해 내는 기간이 길다 보여지는 면에서는 옛날보다 좀 허전하다”고 고백했다.

    민병두 의원은 과거 문화일보 기자시절 98년 국정감사의 시민단체 감사 기획을 주도하기도 했고 99년 재보궐 선거에서 당시 이회창 후보측과 송영길 후보에 대한 선거비용 공개를 지면화 시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정치권력과 시민사회 역관계를 바꾼 일대사건이고, 시민단체 입장에서 볼 때도 활동 영역이 확 넓어지는 소혁명”이었다고 자평했다.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집사람이 ‘빈센트’로 핸드폰의 컬러링을 바꿔줬어요”라고 말한 민 의원은 “위선의 세계인 정치권에 들어가서도 순수한 영혼을 잃지 말라고 컬러링을 바꿔준 것인데 쉬울까? 참 어려운 것 같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국가적 아젠다를 만드는 정치인이 진짜 정치인"이라고 자신의 정치포부를 밝혔다.
    "지금은 누가 아젠다를 리드하는가, 상임위에서 누가 새로운 사회에 아젠다를 던지는가, 사회가 3-4년 후에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 보고, 국제사회 도전이 무엇이라 보며 그걸 미리 읽고 제기하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며 "누가 아젠다는 만드는가? 사회가 3-4년 후에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보고, 국제사회의 도전이 무엇이라고 보며 그것을 미리 읽고 제기하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국회의원의 자세를 설명했다.

    “지역구 관리하고 가끔 언론용 멘트 떼리고, 현재 여야 투쟁에서 적당한 역할 하면 대충 인지도 올라가거든요”라며 지금의 국회의원 모습을 비판할때는 그는 여전히 '기자'였다.

    또 후배 기자들에게도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과거에 비해 집요함은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요새는 발표할때까지 회의장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발표장까지 가야지만 기자들이 않아서 들어요. 옛날에는 현장 주변을 맴돌아야 거기서 특정이 나오는데 별로 기사가 없어서 그러는지 안 하더라고요. 얘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가 느낀 지금의 정치부 기자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정치가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를 쓰면 되고, 누가 숨기는 것도 없다”며 바뀐 정치현실을 말하기도 했다.
    친정이었던 문화일보 논조가 '친한나라당인데 심경이 어떠냐'는 좀 짖굳은 질문에 민 의원은 "노 코멘트"라며 "문화일보는 저를 키워 준 기반이고 제 정신적인 고향이다. 문화일보를 떠날 때 3주간 울었고 문화일보가 잘 되길 바라고 좋은 신문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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