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데스크칼럼은 폴리뉴스의 자매지 월간 <폴리피플> 제2호(2009년 9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폴리뉴스 박혜경 편집국장 >

한국정치의 거목,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로 유훈정치가 만개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서 ‘고아’가 되었다는 민주당은 ‘민주당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것이 DJ의 유훈이었다고 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에서는 ‘화해와 용서’ 정신으로 ‘통합’을 하라는 것이 DJ의 뜻이었다고 한다.

여든, 야든 ‘묻지마 통합’이다. 여권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통합하자는 것이고, 야권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민주당으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훈인가.

DJ의 유언을 대신하는 그의 마지막 일기 어디에도 이러한 ‘묻지마식 통합론’은 없었다.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나는 평생 납치, 사형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생이 있는한 길을 갈 것이다’, ‘경찰의 난폭진압, 야만적 처사, 검찰의 소탕작전하듯 공격, 노무현 전 대통령에 자살 강요’,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가면 큰 변을 면치 못할 것’...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도 ‘내 몸의 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는 ‘독재’를 외쳤다.

이것은 모두 DJ, 그가 평생을 움켜쥐고 내려놓지 못했던 ‘행동하는 양심’.. 이 6글자의 화인이 그대로 새겨진 글들이다.
그는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분노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분노하면 타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국민들도, 이른바 민주세력들도 좀 달랐다. 새삼스러웠다. 다 잊었던 옛 기억이 그제사 되살아나기도 했다.
‘독재’라니... 총칼이 난무하던, 군화발의 시대가 끝난지가 언젠데, 이 무슨 철지난 독재타령인가... 언제까지 길거리 투쟁만 하라는 것인가...
이제는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간 독재타령 그만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힘쓰자는 것도 민주진보진영에서부터 나온 말들이었다. 가히 틀린 불평들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만 변해도 될만한 그는 변하지 않았다. 86세 그 명을 다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청년처럼 더 명료해지고 선명해졌다. 남은 생을 다해 타협하지 않고 싸워야할 ‘독재’는 그에게는 과거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DJ유훈, 묻지마 통합’?... 유훈지키기 보다 ‘포스트 DJ’ 잿밥에 관심

민주세력들은 DJ유훈이 조건없는 화합이 아니라 ‘반MB독재 민주투쟁’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다만 ‘행동하는 양심’으로 반독재 민주투쟁을 하라는 이 유훈을 제대로 받드는 것은 피하고 싶을 뿐이다. ‘행동하는 양심’의 무거운 짐을 벗고 싶은 것이다.

그런던차에 DJ가 영면한 다음날부터 그가 ‘독재’라고 지목한 이명박정부로 부터 ‘화해의 미소’가 날아왔고, 민주당도 그다지 싫지 않은 기색이다.

한쪽에서는 ‘MB와 화해’하면서 한쪽에서는 ‘반MB 민주대연합론’을 내세우며 야권을 결속하려는 민주당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상한 양수겸장의 수를 두고 있다.

게다가 김대중, 노무현의 ‘적자’라는 민주당은 DJ유훈을 따르기보다 ‘포스트 DJ' 싸움에 더 골몰하고 있다.
유훈정치의 KEY 맨이 된 박지원 의원이 DJ의 마지막 유언이라며 전한 ‘민주당 정세균 대표 중심으로 민주대연합하라’는 말이 공식적 신호탄이 되어, 그간 드러내지 못하고 물밑에서만 꿈틀댔던 ‘포스트 DJ’ 경쟁이 수면위로 부상했다.
정세균 대표를 위시해 정동영, 한화갑, 박지원, 손학규 등 포스트 DJ라는 이름하에 ‘호남맹주’자리를 꿰차고 여차하면 ‘차기 대권’까지도 노려보겠다고 뛰고있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대권을 꿈꿀 것이고, 민주당이라면 DJ 후계자가 되기를 누구나 희망할 것이지만 문제는 그 생각과 방법에 있다.

포스트 DJ를 노리는 이들은 한결같이 ‘DJ유지 계승’의 적임자는 자신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DJ의 평생의 유지 ‘행동하는 양심’에는 눈과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다.
힘든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달콤한 잿밥에만 마음을 두고 있다.
거리투쟁 일변도, 정치투쟁 일변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나 ‘행동하는 양심’의 뜻을 계승할 진정성있는 후계자가 보이지 않는다.

리더없고, 정체성 불안한 민주당... 야권 리더 역할할까

민주당 자체도 불안하다.
노무현에 이어 김대중까지 상주를 자임했던 민주당이 盧의 유지는 물론 ‘아버지’ DJ의 ‘행동하는 양심’을 담아내겠다는 의지가 민주당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김 전 대통령이 강조한 ‘야권통합, 민주대연합론’은 민주당의 외연확대론이 아니라 독재와 싸우기 위한 힘을 ‘민주당으로 결속’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민주당이 제1야당이기도 하지만 ‘반독재 정통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민주당이 ‘반독재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가, 민주연합세력의 중심이 될 만한한가, 이것은 회의스럽다.

스스로 우클릭을 했던 ‘뉴민주당 플랜’은 결코 민주진보진영의 수장자리를 차지할 수 없고, 장외투쟁을 하고는 있지만 정치이벤트인지 민주투쟁인지 좀처럼 구분이 안되 ‘야당 선명성’도 회의스럽다. 야권의 리더로서 제역할을 할지 불안하다.

그렇다고 확실한 정권교체 의지가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민주세력이 민주당으로 당당히 결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당의 비전과 인물’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반독재 민주연합론의 최종 목표는 ‘민주정권’이 다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그럴 힘과 능력이 되느냐는 점에는 웬지 확신이 서지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가 없다. ‘반MB 민주연합’을 이끌만한 인물이 없는 민주당에 국민들의 기대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물론 MB정권이 독재냐에는 야권도 이견이 많고, 국민들도 모두 공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쇠고기 촛불시위, 용산참사, 미디어법, 쌍용차사태,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등 강압통치 방식은 과거 군사독재의 그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DJ가 말하는 ‘독재’는 비단 군사독재만이 아니라 국민을 강압통치하는 모든 ‘민주주의에 反하는 세력’을 통칭하는 말일 것이다.
때문에 독재 개념을 쓰든 안쓰든 MB의 독재식 강압통치에는 모두 동의하는 민주개혁세력들이 ‘반MB 연합전선’ 구축을 해야한다는 대의명분에는 변함없다.

민주당, 묻지마 야권통합... 구시대 야당 부활이며 패권정치의 확대재생산

하지만 그것이 ‘묻지마식 민주당으로 야권통합’은 아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세력으로서, 또 인물로서 지도력’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좀처럼 변하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민주당은 DJ의 뜻이 ‘통합’이라며 민주세력을 몰아붙이고 있다. 여당이 ‘여야 통합드라이브’를 건다면 민주당은 ‘민주대연합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묻지마 여야 통합’이 자칫 ‘여야 야합’이 될 수 있듯이, 변하지 않는 민주당의 ‘묻지마 야권 통합’은 ‘구시대 야당의 부활과 확산’을 가져오는 것이고, 이는 ‘민주당 패권정치의 확대재생산’에 다름 아니다.

민주당이 진정 민주세력 ‘지도세력’으로 당당히 서려면 변해야 한다.
DJ서거로 한시대가 간 지금 DJ의 과오도 함께 극복하는 뼈를깎는 자기 쇄신과 성찰의 자세가 최우선 되어야 한다. 특히 DJ의 천형이었으면서도 DJ의 최대 과오인 ‘지역주의’ 청산에 민주당은 사명감을 갖고 앞장서고, 그에 따른 호남 패권의 욕심을 내려놓는 일부터 해야한다.

민주당이 지금 할 일은 ‘묻지마 통합’ 신드롬을 민주세력에 전파할 것이 아니라, 민주진영내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리더를 키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다지고,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여야만 ‘패권확대’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통합’의 대의를 실현할 것이다.

‘독재자는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DJ의 마지막 유언은, 국민을 억압하는 어떤 형태의 ‘독재와 타협하는 세력도 똑같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야당에 대한 무서운 경고이기도 하다.

인동초(忍冬草)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
이것이 ‘김대중’의 후계를 자처하며 ‘DJ 뜻’을 계승하겠다는 민주당과 포스트 DJ군들이 새겨들어야 할 진정한 DJ의 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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