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30분간 울음소리 이어져
“사인, 사망 장소, 시간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떠나 보내나”
“명단 공개 문제, 유족 만날 공간 제공하지 않아 발생”
정부에 ‘진정한 사과’ 등 6가지 요구
민변 “수사 미진한 부분 추가 법적 조치할 것”
[폴리뉴스 김민주 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참사 발생한 지 24일 만인 22일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유족들은 참사 이후 정부가 유족들의 만남을 지원하지 않는 등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며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실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족들은 1시간30분 가량 진행된 회견 내내 통곡하며 몸을 가누기 힘들어 했다.
희생자 이남훈(29)씨의 어머니 A씨는 아들의 사망진단서를 들어보이며 “사망일시 ‘추정’, 사망장소 이태원 거리 노상, 사인은 ‘미상’이라고 쓰여 있다. 어떻게 부모가 내 자식이 죽었는데 사인도, 시간도, 제대로 된 사망 장소도 알지 못하고 내 자식을 어떻게 떠나 보내나”라며 “어떤 순간에 죽음에 이르렀는지, 누군가 도와줘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았는지, 병원 이송 도중 사망했는지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A씨는 “무슨 꿍꿍이, 무슨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 시신을 경기도 외곽으로 뿔뿔이 흩어놓았나”라며 “이태원 근처 큰 의료시설에 최소 20~30명이라도 모여있었다면 이런 의구심은 하지 않겠다. 무엇이 두려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지시를 내렸나. 결국엔 유가족끼리 만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계산 속에 이뤄진 것은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희생자 이민아씨의 아버지 B씨는 “화장한 아이의 유골을 일단 집으로 데리고 왔다. 봉안당을 몇 군데 다녀봤지만 나이 들어 돌아가신 분들 사이에 젊은 아이 유골을 두기 싫어서였다. 유족들끼리 만나 합동 봉안당, 추모비라도 의논해 보려는 마음이었다”며 “그런데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겨우 유족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아무 지원 없이 무슨 비밀 공작하듯이 말이다. 정부가 국가가 왜 이렇게 피해자들을 대하는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는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로 갑론을박하게 만든 것도 결국 유족들끼리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처음부터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며 “유족들이 모이면 안되는 것인가. 유족들이 무슨 반정부 세력들이라도 되나. 장례비와 위로금은 그렇게 빨리 지급하면서 정작 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유족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왜 참사 24일이 넘도록 안 해주는 건가”라고 말했다.
이어 “참사와 관련해서 가장 서로 공감할 수 있고 서로 위안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같은 유가족들”이라며 “이를 차단한 것과 다름 없는 정부 대처는 비인도적”이라고 쏘아붙였다.
희생자 이지한(24)씨의 어머니 C씨는 “아직도 ‘엄마’하며 들어올 것 같고 ‘배고파요’라는 환청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도 받으려 한다. 지한이 아빠는 장례식 후 자살시도를 하였고 지한이 누나는 자기가 대신 죽었어여 한다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현재 처한 어려움을 손을 떨며 말했다.
C씨는 자신이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었다고 밝히며 대통령에게 직접 써온 편지를 읽었다. 그는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경찰청장, 서울시장, 행안부 장관, 국무총리 등 참사 책임자들의 참사 전후 행태를 읊으며 “이 모두에게 직무유기, 업무상 과실치사는 물론이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해 달라”라며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들이 국민의 생명을 하찮게 여겨 생명을 잃게 했다면 그들을 가까이 두어 무엇을 얻을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희생자 이상은(25)씨의 아버지 D씨는 딸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는 “대학 졸업과 함께 열심히 준비해서 미국 공인회계사 합격하고 ‘아빠, 나 합격했어’하고 울먹이던 핸드폰에 녹음된 너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통곡했는지 모른다”라며 “너가 태어나서 처음 아빠 가슴에 안겼을 때의 따스함처럼 재가 돼 아직도 식지 않은 따뜻한 너를 가슴에 안고 너를 보내러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살아있을 때 사랑한다고 자주 안아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됐는지”라며 눈물을 애써 삼켰다.
D씨는 정부를 향해 “국민 한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고 전 국방부장관을 구속하고 심지어 전 대통령까지 수사하려고 하는 이 정부에 묻는다”며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어디 있었는지, 국가는 무엇을 하였는지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참석한 한 유족은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대해 전문가들이 모두 2차가해라 했다. 그런데 그 전에 저희들 동의 없이 분향소에 위패와 영정사진이 없었다. 그 분향소를 봤을 때 그 또한 저한테는 2차가해였다”며 울부짖었다.
또 다른 유족은 “우리 자식들 제발 살려 돌려보내 주세요”라고 거듭 말하다 슬픔을 가누지 못해 부축을 받으며 잠시 회견장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도 했다.
이날 유가족들은 정부에 6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진정한 사과 ▲성역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등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련한 민변 ‘10·29 참사 대응 TF’ 측은 지난 15일과 19일 2차례에 걸쳐 유가족과 간담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희생자 가족 34명이 참여했고, 앞으로 더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TF 측은 전했다.
윤복남 민변 TF 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유가족을 만났을 때 처음부터 기자회견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근데 말씀을 다 듣다보니 마치 현재 장례를 다 치뤘고 수사가 진행 중이니 이제 다 모든 게 다 마무리 된 것처럼 진행됐다”며 “국민들께 알리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유가족과 협의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명단 공개 논란에 대해서는 “민변에서도 밝혔다시피 유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온전한 추모와 기억을 위해 동의하는 분들의 명단을 공개해 달라는 게 유가족의 뜻이다”라면서 “지금의 명단 공개는 정부의 선제적 조치가 없다보니 희생자 추모를 위해 언론사가 됐든, 종교행사가 됐든 사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형태”라고 했다.
유족 보상 문제에 대해선 “제가 대리인으로서 (유족과) 만났을 때 손해배상에 대해선 한마디도 논의하지 못했다. 얼마를 준다한들 아들이 살아오고 딸이 살아오냐고 말씀했다”며 “정부에서 철저하게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게 선행되지 않는 한 금전적 배상만으로 끝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대응 방침에 대해선 “민변 TF는 변호사 50여명이 결합돼 있다. 수사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법적 조치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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