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한유성 기자] 며칠 전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양의 머리를 걸어두고 개고기를 팔았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당 대표의 울먹임이었기에, 궁지에 몰린 젊은 정치인의 망발이란 비판 이상으로, 불과 6개월전 윤 대통령을 선택했던 국민들에게 지난 일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 편승하여 사실상 ‘반 문재인 동맹’으로 묶인 세력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전직 검찰총장을 내세워 선거에 승리했습니다. 0.73%의 차이였지만, 선거에 승리한 윤석열 당선인은 ‘유능한 보수’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여망 속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출범시킵니다. 그러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집권세력은 시대정신과 국가 비전의 제시는 커녕 제대로된 아젠다 하나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냉정하게 보아 부처 공무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재배열하는 수준의 인수위 결과물은 어떻게 보면 윤석열 정권의 초기 성과를 결정짓는 바로미터였습니다.

인수위 기간 내내 당선자의 최대 관심은 아직도 논란이 되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었지만, 국민들의 기대는 새롭게 출범할 정권의 면면에 쏠렸다고 생각합니다. 정권교체의 바람을 타고 당선된 아마추어 대통령이지만, 그만큼 역으로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인재를 널리 구할 것이고 그들을 통해 통합과 포용의 정치를 실현해 가리라는 희망섞인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윤 정부 출범 이후 갤럽 조사의 부정평가 항목에는 언제나 맨 위에 ‘인사 문제’가 있었습니다. 검찰 출신과 윤핵관, 그리고 측근 인사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포스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전 정부와 비교할 수 없는 전문성’을 이야기했지만 말이 많던 교육부장관은 설익은 ‘5세 취학’ 정책으로 40여일만에 퇴출되었고, 보건복지부 장관과 검찰총장은 아직도 공석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습니다. 100일을 평가하는 KBS와 MBC의 여론조사 결과는 윤석열 정권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곳 모두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28%대, 부정평가는 66에서 67%를 보였습니다.

KBS조사에서 임기내 국정운영 전망을 묻자 ‘잘하지 못할 것’이란 응답이 59.3%였습니다. 최근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매우 잘못한다’는 응답이 60% 전후를 기록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MBC 여론조사에서 부정평가의 이유를 물었더니, ‘능력부족’ 32.8%, ‘독단적이고 일방적’ 22.8%였습니다. 특히 대통령실 참모 등 고위직 인사에 대해서는 67.7%가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100일간 윤 대통령은 행보마다 논란을 낳았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경제위기의 해법보다, 전 정권의 책임을 묻는 사정과 시대 착오적인 북풍몰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여당 당대표 축출 등에 힘을 쏟았습니다. 급기야 수도권 홍수 상황에서는 ‘무정부 상태’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지지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최근 조사결과에 의하면 보수층의 34.1% 그러니까 3분의 1이 지지를 철회했고, 윤 대통령을 지지한 2030 남성 10명중 6명이 등을 돌렸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취임 100일 기자회견 어디에도 사과나 쇄신의 약속은 없었습니다. 100일 시점의 대통령이 미래를 얘기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았다는 자화자찬만 했습니다.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 독선과 무능, 바로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는 여론의 지적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향후 정국 운영 방안 등을 밝히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향후 정국 운영 방안 등을 밝히고 있다.


정말 문제는 윤 대통령의 태도인데, 스스로 이 모든 상황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고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니까, 인적 쇄신도 국정방향의 수정도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김대기 비서실장의 퇴진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교육담당 비서관의 교체가 전부였습니다. 오히려 김은혜 전의원으로 국정 홍보라인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결국 지지율 폭락이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해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야당의 반대와 부정적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정수석실 폐지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신설, 행안부 경찰국 신설등에 대해 ‘대통령의 제왕적 초법적 권력을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 들어오게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국민 모두 법을 무시하는 시행령 통치를 우려하는 상황이지만 대통령 스스로 자가당착이란 생각은 아예 머리 속에 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무엇보다도 경제상황이 문제입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문재인 정권 자체의 성패를 좌우했다면, 윤석열 정부에게 닥친 경제위기 국면은 정권의 차원을 뛰어넘어 국가전체의 재앙적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계속 전 정권에 책임을 돌리는 논조를 가져가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위기 극복은 물론 현 정권의 책임 무마도 할 수 없습니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복합적 위기 상황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답변이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어제 회견에서도 원전산업의 복원을 업적으로 주장했지만, 엊그제 바이든이 최종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은 다른 지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대규모 재정지출을 결정했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인 480조원이 투입되는 신재생에너지 전환 사업은 2030년까지 전력생산의 40%를 커버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EU에 미국까지 함께 하는 에너지 전환, 원전이 해답이 아닌 것은 명확한데 윤 정부는 과연 어떤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윤석열 정부가 이야기하는 ‘작은 정부’가 과연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전략이 될 수 있는지 국민들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진국 대열의 대부분 국가가 고민하는 복지국가 비전, 윤 정부는 어떤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지 제시해야 합니다. 감세로 인한 부담을 국가보유자산의 매각으로 채우겠다는 발상이 보도되었는데,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국민들이 바라보는 의혹의 시선을 경계해야 합니다.

NBS조사에 나타난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잘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61%에 이릅니다. MBC 여론조사에서는 법인세 소득세 등 ‘부자 감세에 반대한다’는 주장이 51.3%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불평등 해소인데, 위기 속에 더욱 악화될 서민의 삶을 고민하기 바랍니다.

100일이 되는 날, 정권의 폭주를 견제하겠다면서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175명 명의로 ‘대통령 집무실-관저 관련 의혹 및 사적채용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습니다. 사실상 공사구분이 모호하다고 지적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공식적으로 문제삼은 것인데, 리더십을 새로 구축하는 야당과의 대치 정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 전체에 재앙적 상황이 오는 것 아니냐는 국민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지지율을 민심의 정직한 반영이라고 한다면 윤석열 정권은 정치적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승계한 지 100일만에 여야 정당지지율이 역전된 상황 역시, 국정에 대한 무한책임을 가지는 여당에는 위험신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이준석이 제기한 가처분소송은 첫 심문기일인 17일자로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법원 관계자가 추가적인 심문 없이 조만간 결론을 낼 것이라고 언급했다지만, 그 결론에 따른 파장을 생각하면 법원이 쉽게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국정에 대한 무한책임을 가지는 여당인데, 대통령과 윤핵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당대표 몰아내기의 수순이 법원의 판단에 맡겨진 상황, 국민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요?

국민의힘 중진인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최근 “윤석열정부 탄생에 기여한 당 밖의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민통합형 재창당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준석 전 대표의 행보와 관련하여 유승민, 오세훈 등과 함께 하는 신당 창당의 가능성, 그리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금태섭 전 의원등의 신당설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여당이 이대로는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움직임인데, 사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는 상황이면 여권 내 이합집산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다만 그 과정이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 미래에 대한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보수 세력 내부의 각성과 과감한 도전을 기대해야 할 듯 합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주호영 비대위원장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성적표입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20%대라는 낙제 점수에 대해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기에 여당 내 내홍은 물론 거대야당까지 끌어안고, 위기 대처에 몰입하는 방향으로 국정기조의 전환을 약속했다면, 국민의 불안을 덜고 아울러 본격적인 지지율의 반전도 기대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대통령 취임 100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안으로는 반성과 새로운 의지가 함께 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인용한 모든 여론조사 수치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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