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제국인가, 새로운 비상(飛翔)인가?

1. 수렁에 빠진 미국, 중국의 ‘백년의 마라톤’

 미국 제46대 대통령 조 바이든(Joe Biden) 시대가 열린다. 2021년 미국 신정부는 '미국다운 미국'을 재건하는 소임 앞에 섰다. 지금 미국이 비틀거리고 있다. 바이든 시대 미국은 제국의 위상을 회복하고 다시 한 번 세계 속에 우뚝 솟을 수 있을까?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사진=연합뉴스 제공> 
▲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사진=연합뉴스 제공> 

 

 트럼프 4년의 명암은 너무도 뚜렷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나 행동이 세계의 조롱거리로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미국이 코로나(COVID-19) 팬데믹의 최대의 희생자를 낳은 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미국은 수렁에 빠졌다. 그러나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데에 트럼프만이 책임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주류 지배세력은 미국의 건국정신을 망각했고 배반했다. 백악관, 의회, 월가, 종교계, 언론, 대학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청교도 정신, 공화주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가운데 지배계층의 오만, 금권주의, 도덕적 타락이 한층 극심해졌다. 미국 사회는 극도로 분열되었다. 계층, 인종, 성소수자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통적인 공동체는 파괴되었고 마치 현대판‘부족주의’사회로 해체되는 모습까지 드러냈다. 제국의 포용성마저 사라졌다. 밖으로는 국제사회의 리더십마저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미국이 비틀거리는 사이 중국이 급부상했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적 패권국이 되려는 중국의 대국굴기(崛起)의 야심은 뿌리가 깊다. 중국 문제 전문가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 산하 중국전략센터 소장인 M. 필스버리는 미․중 대결의 본질을 파헤쳐 큰 주목을 받았다.1)  그는 미국이 전혀 모르는 사이 마오쩌둥 시대부터 이미 세계 패권을 노린 중국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고 하면서,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 패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바야흐로 바이든 시대가 열리는 지금 필스버리의 통찰력과 혜안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중국몽(中國夢)』은 2009년 인민해방군 지도자를 양성하는 국방대학교 교수 류밍푸(劉明福)가 쓴 책이다, 이 책은 중국이 어떻게 미국을 제치고 세계 주도국이 될 것인가를 기술했다. 왜 소련이 미국을 추월하는 데 실패했는가를 분석하였고,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려면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국의 꿈은 중국의 부흥이며, 21세기 중국의 위대한 목표는 세계‘넘버 1’최강국이 되는데 있다. 류밍푸는 중국과 미국의 경쟁은 결투나 복싱 경기가 아니라, 기나긴 마라톤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마라톤이 끝나면 중국이 마침내 지구 상에서 최강국으로 군림한다고 설파했다. 부흥과 마라톤이 전략적 키워드이다. 그에 따르면 1949년을 출발점으로 백년 후 2049년 마침내 마라톤의 피날레이자 중국 부흥의 날이 개막된다.

 이처럼‘중국몽’이 국가 목표로 제시된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주석이‘강한 중국의 꿈’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웠다. 나아가 그는 경제적 급성장세를 타고 한껏 자만심에 부푼 중국 인민의 자부심과 치욕을 안긴 구미(歐美)세력에 대한 설욕 의지를 하나로 묶었다. 중국은 미국의 약점을 깊이 연구하고, 미국에 맞설 준비를 착실히 해왔다. 미국이 자만하고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중국은 미국의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특히, 시진핑 시대에 와서 중국은 경제, 과학기술, 대학, 군사, 정보기관, 국제기구 등 모든 부분에서 미국의 약점을 간파하면서 심장부로 파고 들었다. 세계 패권을 향한 중국의 대장정에서 미국은 추월당하고 있다. 미국은 추락하고 말 것인가?

 

2. 바이든의 두 과제: 민주주의와 세계 리더십 회복

2-1. 미국 민주주의 회복 가능한가?

  바이든 대통령 앞에 제기된 미국의 국내외적 문제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즉, 민주주의와 세계 리더십의 회복이 절박한 과제로 부각된다. 마침 바이든이 대선 후보자 시절인 지난 봄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미국이 다시 리드해야 하는 이유 – 트럼프 이후 미국 외교정책 구제 -”에서도 미국 민주주의 회복의 과제와 더불어 외교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대내외 정책의 방향을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 검토가 요망된다.2)

 우선 민주주의 문제이다. 21세기 글로벌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주의의 발생지에서조차 민주주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21세기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지고, 세계 곳곳에서 붕괴되는 현실을 목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총칼이 아니라, 투표함에서 붕괴가 시작된다. 냉전시대 민주주의의 죽음은 대개 총을 든 군인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군부 쿠데타가 아닌,‘선출된 독재자’가 대중 동원의 포퓰리즘을 통해 민주주의를 붕괴시킨다. 그야말로‘민주적이고 합법적인’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전복시킨다. 지금 전 세계 많은 국가가 탈(脫)민주주의 체제로 퇴행 중이다.3)

 미국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말았다. '민주주의의 문지기(gatekeeper)'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당, 사법부, 언론, 지식인 그룹 등이 민주주의의 문지기이다. 이들이 모두 자기 역할을 내팽개쳤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에 대해 레비츠키와 지블렛 두 사람은 트럼프 당선 직후,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성공적인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쇠퇴와 붕괴를 경험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한다. 그들은‘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합법적인 심판(법원) 매수 또는 교체’등이 민주주의 붕괴의 명백한 신호들임을 밝혔다.4)  여기에다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달로 인한 양극화와 중산층의 붕괴가 지금까지 누려왔던 민주주의에 더 이상 관심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불확실한 일자리, 사회적 연대감의 해체,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은 극단적인 포퓰리스트 선동가가 발호하는 온상이 된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세계 도처에서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

 현대 국가는 대개 민주주의 이념을 담은 헌법과 법․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헌법과 법․제도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가 아니다. 선출된 독재자가 대중 독재로 기운다면 헌정 체제는 한갓 장식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민주주의를 파괴 과정에서 구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민주주의는 정치적 경쟁자를 인정하는‘상호 관용'과 (집권세력이) 법적 권한의 행사를 신중히 여기는‘자제’로 지탱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헌법 같은‘제도’도 중요하지만 상호 관용이나 자제의 관행과 같은 오래된 전통의 보이지 않는‘규범’이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비틀거리는 미국 민주주의에 칼침을 놓았다. 숱한 거짓말과 허위 정보 유출, 정치적 반대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 국방 및 정보기관의 충성심 강요, 정치적․재정적 이익을 위한 대통령 권력과 재량의 오용, 그리고 인종 차별 우익 극단주의 그룹에 대한 선동 등, 여기에다 세계와 함께 가야 할 의무와 국제적 리더십 모두 걷어찼다. 미국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전망은 무척 어둡다. 민주주의 연구 분야의 권위자인 래리 다이아몬드는 미국 정치기관의 부패는 도널드 트럼프보다 더 깊다고 하면서, 새로 출범하는 신정부가 미국 민주주의를 치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5)  그러나 어쨌든 바이든이 강조했듯이 미국 국내정치 분야에서 민주주의 회복 즉, 트럼프가 망쳐놓은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정상적 작동이야말로 당장 요구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2-2. 세계 리더십 회복 어떻게?

 다음으로 미국이 과연 세계의 리더십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바이든 시대에도 트럼프의 그림자를 지우기 힘들다. 이를테면‘ABT(Anything But Trump)’ 즉, ‘트럼프 아니면 무엇이든 (좋다)!’는 식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모든 정책을 뒤집는 방식의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가능하지도 않다. 바이든의 미국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한다면 부질없는 일이다.

 소련 제국이 20세기 말 세계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미국은 세계의 환호성과 축포 속에서 인류사의 메시아로서 우뚝 솟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인류사의 최종적 완결판으로 여겨졌다. S. P. 헌팅턴의 제자였던 F. 후쿠야마는 약삭빠르게도 이러한 시대 상황을‘역사의 종언’으로 불렀다. 더 이상 미국에 도전할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언제든지 미국이 조심해야 할 적이 있다. 이에 헌팅턴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 즉, 이슬람 문명권 국가가 미국의 적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른바‘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이라는 명제가 부각되는 계기였다. 때마침 미국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의 수렁에 깊이 빠졌다.

 미국이 중동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이 또 다른 문명권 국가인 중국이 급부상할 수 있었다. 2010년 중국은 드디어 일본을 제치고 미국 다음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배타적 민족주의 즉, 중화주의 기치 아래 자유주의적 제도와 규칙을 적극 활용하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결국 중국이야말로 미국이 만들어 놓았던 자유주의 게임 틀의 최대 수혜자였던 셈이다. 내친김에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 세계를 함께 나눠먹자는‘신형 대국관계(G2)’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이 잠시 샴페인을 터뜨리고 자만하는 사이에 중국은 미국의 등을 타고 올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급부상에 놀랐다. 그는 중국을 억제하고자 중동에서 발을 빼고 아․태지역으로 전략적 눈을 돌렸지만 중국의 야망과 마수를 막아내는데 전혀 효율적이지 못했다. 오바마의 대중전략은, 대북정책도 마찬가지지만, 오바마 특유의 '우아한' 언술에 그치고 말았다. 그는 미․중 패권 대결에서 오히려 뒷걸음쳤다. 오바마의 대북 정책인‘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도 사실 전략적 무대책을 우아하게 표현한 실없는 소리에 불과했다. 중국은 그 사이 정보통신, 국방안보, 과학기술 분야 등에서 미국의 심장부까지 파고들 수 있었다. 이러한 미국의 퇴조와 미국 국민의 좌절이 트럼프의 등장을 불러왔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동안‘자유주의적 국제주의’로 세계를 이끌어왔다. 미국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신의 섭리(providence)’로 여겼다. 미국은 스스로 ‘신의 섭리’를 구현하는 국가로 자임했다. 미국은 민주적 자본주의 생활 방식의 수호자이자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반을 둔 국제시스템의 옹호자로 여겨졌다. 워싱턴은 수십 개의 국가에 군사안보, 해상안전,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제공했으며, 그 대가로 이들 국가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처럼 미국이 만든 세계 속에서 국제사회는 상당히 오랜 동안의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누렸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돌연히 ‘미국 우선’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마침내 전후 세계질서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사실 ‘미국 우선’의 접근 방식은 미국 역사에 깊은 뿌리를 둔 전통적인 외교정책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미국과 세계와의 마찰과 부조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트럼프의 전략적 선회로 잠시 충격과 혼돈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미국이 창출하고 주도해온‘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사실 냉전체제 아래 미국 패권 시대의 산물이었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냉전체제의 와해 속에 자유주의적 미국 패권 시대가 저물어갔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야말로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온 미국이 오히려 자유주의적 법·제도 그리고 규범의 최종적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트럼프는 단연코 최종적 피해자로서의 미국의 역할을 거부했다. 트럼프는 동맹국을 경멸하고 국제협정에서 탈퇴했으며 친구와 적 모두에게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되기를 거부했고, 동맹과 적으로부터‘더 이상 탈탈 털리지 않겠다’고 외쳤다. 미국이 만든 법․제도, 게임 규칙, 규범이 제대로 작동되었던 70여 년 동안 개방체제와 자유무역으로 독일, 일본, 한국, 타이완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많은 혜택을 봤다. 이제 미국은 지나온 길로 되돌아 갈 수 없다.

2-3. 미국 주류의 중국 인식의 문제

 미국 주류 학자들의 그릇된 세계 인식이 미국을 표류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류 학자들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인류 보편적 가치로 여겼고 특히, 중국의 세계 전략과 야심에 대한 긴장을 놓쳤다. 그들은 자유주의 국가가 그렇지 않은 나라에 개입해 국제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받아들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중국이 이 길로 가고 있다고 했다. 프린스턴 대학의 존 아이켄베리가 이런 이념의 대표적 신봉자로 중국에 대한‘미국의 무장해제’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최근 약간의 반성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나이브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6)

 흔히 역사상 최고의‘외교 달인’으로 평가되는 헨리 키신저는 대표적인 중국 포용론자이자, 중국을 위해 살아온 진정한 친중파라고 할 수 있다. 키신저는 미․중 갈등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세계정세가 제1차 대전과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중 간 신냉전이 제3차 대전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키신저는『중국 이야기』에서 중국은 독특한 나라라고 전제하면서, 고대의 역사라든가 전략과 정치의 고전적 원칙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7)  책 곳곳에 중국 예찬론이 묻어난다. 키신저는 평생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떼놓았다는 자부심에 도취해 살아왔지만, 그는 중국의 야심과 와신상담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중국 친구들이 키신저를 속였다기보다는 중국을 잘못 읽은 키신저 자신이 스스로와 그의 조국 미국마저‘비의도적으로’속여 왔다고 본다.

 한편 최근 미․중 패권 대결에 대한 독특한 견해 제시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은 G. 앨리슨의 얘기도 흥미롭다.8)  앨리슨은 미․중 패권 경쟁이 한창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패권국과 신흥 강국이 부딪칠 경우 전쟁으로 치닫기 쉬운 상황을‘투키디데스의 덫’이라고 했다. 그는 신흥 세력인 중국의 부상과 그에 대한 패권국 미국의 두려움이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 앨리슨은 중국의 급부상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며, 워싱턴의 지나친 우려 자체가 오히려 미․중 갈등을 부추긴다는 아주‘괴이한’논리를 전개했다. 그의 책『예정된 전쟁』은 중국 문명을 예찬했던 키신저보다 한 술 더 떠서 싱가포르의 리콴유를 대동하고 아예‘시진핑의 중국이 원하는 것’이라는 장을 할애하면서까지 시진핑을 그야말로 예정된 불세출의 지도자로 치켜세운다. 마치 시진핑에 바치는 한 편의 헌사(獻辭)처럼 보인다. 더욱이 중국이 군사적 최강국이 되고자 하는 전략은 사실 미국이 추구해왔던 것과 마찬가지 전략 아니냐고 하면서 미국 조야에‘중국도 미국과 똑같다고 상상하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20세기 초 미국이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가 되고자 했던 열망과 전략을 상기시키는 한편, 최근 중국의 패권 의지와 전략이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크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강변한다. 앨리슨은 미국과 중국의 힘의 균형이 새로운(=조화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면서, 워싱턴이 베이징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이야말로 워싱턴-베이징 간의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게 된다고 우려한다. 결국 미․중 간 전쟁으로 치닫는 투키디데스의 덫을 피하려면 미국이 중국을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말라는 얘기다. 중국 당국자가 먼저 미국의 대중 경계심을 푸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이, 앨리슨이 이렇게 나서서 중국에 대한 심리적 무장해제와 함께 전략적 경쟁의 불필요를 미국 국민에게 열심히 설득하는 중이다.9)  미국의 주류 학계에 손을 뻗친 중국의 검은 그림자 모습이 어른거린다.

 

3. 미․중 대결: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트럼프는 남을 속일지언정 남에게 속지 않을 인간이다. 트럼프는 진작부터 중국의 흉심과 야망을 알아챘다. 그는‘중국이 미국의 주적이다’고 선언했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여 백악관의 주인 자리를 다시 꿰찼다 하더라도 그의 말이 허풍과 허언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야말로 미국의 주적이라는 선언은 미국 국민에게 깊이 각인되고 중국에 대한 위기의식을 자극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이 중국에 무릎을 꿇는다면, 미국의 자손들은 자유주의 세계에 가장 큰 위협인 중국 공산당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하는 한편, 동맹국들에게는 중국 공산당으로부터의 위협에 함께 맞서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미․중 갈등은 트럼프 말기에 포성 없는 대결상태까지 왔다. 무역, 금융, 5G(통신설비), 과학기술, 국방안보, 우주 등 모든 영역에서 제로섬 구도가 형성되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초기에 무역 부문의 타협은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역 부문은 통계 수치로 가장 잘 드러나는 실물경제 부분으로 소비재(중국)와 농산물(미국)이 대종을 이룬다. 이 교환=무역은 윈-윈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무역 부문에서의 양국 간 딜은 쉽게 타결될 수 있다. 무역은 세계 패권 영역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래, 세계적 리더십 회복은 중국과의 세기적 대결로 판가름 난다. 바이든의 미국 신정부는 제국의 패권을 둘러싼 미․중 대결 상황을 회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중 대결의 승부는 누구도 낙관할 수 없다. 미국 주류 학자들이 서울에 오면 언제나 요란한 박수 소리와 함께 주머니 용돈도 두둑하게 챙긴다. 이들과 같은 주류 친중파 그룹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다시 큰 목소리를 낸다면 미국의 미래는 한낱 부질없는 헛꿈에 불과할 것이다. 여기에다 부패하고 부도덕한 미국의 파워 엘리트 그룹과 월가의 자본가들(수퍼리치)이 중국 공산당(CCP)과 손잡고 탐욕의 행진을 계속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미국의 급속한 추락은 확실하게 보장된다. 역사의 신(神)은 더 이상 미국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두 측면에서 기여를 했다. 하나는 부정적 기여로,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데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더 큰 패악질을 해댔다. 세계가 트럼프를 경멸하고 혐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른 하나는 긍정적 기여로, 미국이 결코 중국과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민주주의 파훼와 중국문제 둘 다 대통령 바이든이 안고 가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은 미국을 밀어내고 베이징을 세계의 중심으로 떠받드는 중화질서아래 세계 최강대국이 될 때까지 숱한 제후국들이 치고받았던 전국시대의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이다. 50여 년 동안 미․중 관계의 현장에서 중국의 대미 전략 사고를 파헤친 진정한‘애국자’필스버리는 이렇게 술회한다.

  “미국에서 신임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베이징은 탁월하게 전략적 변신을 해왔다. 워싱턴의 유력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견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능숙하게 대처했다. 미국과의 세(勢)를 판단함에 있어서, 중국 지도부는 전국시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적진에 들어가 있는 간자(間者). … 이에 반해 미국에게는 중국의 전략적 사고에 관한 직접적인 통찰력을 제공해줄 만한 사람이 없다.”10)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했던가? 이는 중국의 국가 경영자와 전략가의 필독서인『손자』제3편「모공(謀攻)」의 핵심이다.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은 출범 처음부터 USA를‘적’으로 규정하고 출발했다. 중공은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면서 2049년 국가목표 달성을 위해‘백년의 마라톤’을 역주(力走)하는 중이다. 반면, USA는 중국을‘친구’로 여기면서 양국의 협력관계를 추구해왔다. 바로 여기에 미․중 간 상대 인식에 대한 본질적 차이가 있다. 바이든 4년 후의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안팎으로 지치고 초라해진 엉클 샘일까, 아니면 다시 한 번 나래를 펴고 힘껏 비상하는 콘도르의 미국이 될 수 있을까?

 

 

<참고문헌>

1) Michael Pillsbury, The Hundred-Year Marathon(2015)/한정은 옮김,『백년의 마라톤 –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의 세계 패권 대장정 -』(영림카디널, 2016).

2) Joseph R. Biden, Jr, “Why America Must Lead Again - Rescuing U.S. Foreign Policy After Trump -”Foreign Affairs March/April 2020.

3) 조민,“민주공화국:‘통합과 공존의 정치’구현”21세기 공화주의 지음,『21세기 공화주의』(인간사랑, 2019).

4) S. Levitsky․D. Ziblatt, How Democracies Die(2018)/박세연 옮김,『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 2018), pp. 95~123.

5) Larry Diamond, “A New Administration Won’t Heal American Democracy”, Foreign Affairs 2020.11.10.

6) 존 아이켄베리(John Ikenberry), "자유 민주주의, 거시적 기획에 실패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7.01.28.

7) Henry A. Kissinger On China(2011)/권기대 역,『중국 이야기』(민음사, 2012).

8) Graham Allison, The Thucydides Trap: Are the U.S. and China Headed for War? The Atlantic, 2015.9.24,;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2017)/정혜윤 옮김,『예정된 전쟁』(세종서적, 2018).

9) 중국에 대한 필스버리와 앨리슨의 견해 차이에 대해서는 2020년 10월 어느 날 김진호 기자와의 북한산 둘레길 산책 토론에서 시사 받은 바 크다. 김진호의 세계읽기,“시진핑에게 노벨평화상을?‘트럼프 사람’에게 듣는‘트럼프 생각’”<경향신문> 2017.11.20.

10) 마이클 필스버리, 앞의 책,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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